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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Nov 23. 2023

느리고 못하는 재능이 왜 살아남는가

재능은 '잘하는 것'인데, 나는 왜 느리고 못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 할까? 그건 '잘하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와 고정관념이 잘못된 부분이 많은 데다가, 느리고 못하는 것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재능이 특출났는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재능이 딱히 남다를 게 없어 보이는 사람인데 그 분야에서 끝까지 살아남거나 괄목할 만한 성과들을 남기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살아남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인내와 꾸준한 노력? 단지 그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도 1일 1깡의 자세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클리어 해나가면, 목표하는 바를 이루고 재능을 꽃을 피우게 될까.


첫째, '잘하는 것'에 대한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잘한다고 하면 우선 우리는 순위와 상을 떠올린다. 나가수, 슈스케, 미스트 트롯, 불후의 명곡,  전국노래자랑... 모두 순위를 매기고, 순위에서 앞서서(이겨서) 상을 받은 사람들은 주목, 돈, 명예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순위가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순위는 당연히 의미가 있고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문제는 순위를 매기는 기준이 섬세하거나 정확하거나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겨냥한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보면 심사위원석에 앉아있는 사람들 중 참가자보다 뛰어난 사람도 있겠지만, 참가자보다 먼저 출세한 사람도 많다. 즉 실력보다는 유명세로 A가 B를 심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애당초 100% 객관적인 심사란 있을 수 없다. 무슨 기준이든 인간의 뇌 속에 들어있는 이상 이미 그것은 주관적이다. 


그래서 오디션에 뽑힌 사람은 내가 잘났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없고, 떨어진 사람은 내가 못났고 재능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쇄기를 박을 필요가 없다. 그 당시의 상황과 기준에서 내가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다. 사진을 예로 들면 제품 사진도 있고, 감성적인 예술 사진도 있다. 제품 매뉴얼에 들어갈 사진을 두고 감성적이지 않다고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 역시 설명을 잘한 글, 묘사가 뛰어난 글, 언어의 맛을 잘 살린 글, 체험을 담백히 잘 기록한 글, 술술 읽히는 글... 등 좋은 글의 기준은 수없이 많다.


브런치의 경우를 보자. 구독자가 많거나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선정되거나 라이킷이 많거나 메인에 노출되면 좋은 글일까? 물론 좋은 글일 가능성이 많다. 중요한 건 그 반대의 경우다. 구독자가 적고, 라이킷도 적고,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매번 낙방한다면 별로인 글일까? 물론 글이 정말 별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밖의 경우도 무수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노출의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 글의 주제가 대중적이지 못한 경우, 작가가 글을 꾸준히 발행하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지 못하는 경우, 브런치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나와 안 맞는 경우...


중요한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나를 '재능없음'이라는 고정관념에 가둬버린다는 것이다. 스스로 주홍글씨를 새겨 버린다. '별 볼일 없네' 하고 말이다. 재능의 싹을 싹둑 잘라버린다. 재능에게 판을 깔아줘야 춤을 출 것 아닌가.


그러니까 재능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고, 생각이 깨어있어야 한다. 가수 싸이는 아무도 자기 곡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내가 직접 내 곡을 불러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데뷔 때 에피소드를 방송에서 밝힌 바 있다. 


스타뉴스 기사 일부를 인용한다. ①




싸이의 당초 꿈은 가수가 아닌 작곡가였다.


미국 유학시절 부모님 몰래 용돈을 모아 하나씩 사서 모은 악기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한국에 돌아올 때에도 음악을 한다는 것을 비밀로 하기 위해 세관에서 악기를 찾아다가 집에 들여놓지도 못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어렵게 쓴 곡들이 싸이의 1집에 수록된 노래들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싸이가 직접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쓴 것은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곡을 주기 위해서 써뒀던 곡이었다. 그러나 싸이의 1집에 수록된 노래들 중 ‘새’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을, 작곡가로서 써놓긴 했으나 곡을 사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해 한국에 돌아왔고, 어려움 속에 작곡을 했으나 곡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막막했다. 음악에 모든 것을 걸었던 싸이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싸이는 그 막막함을 ‘음주가무(飮酒歌舞)’로 달래고 있었다. 나이트클럽에 가서 술을 마시고 밤새워 춤을 추고 새벽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해장국을 먹고 귀가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밤새 열심히 춤을 추었으나 이렇다 할 ‘소득’없이 쓸쓸히 귀가해 ‘새’가 된 자신을 발견했을 때는 무척이나 한심했다. 이런 휑한 마음을 표현한 곡이 바로 ‘새’.


결국 싸이는 ‘새’를 비롯해 곡을 달라는 사람이 없어 쌓이기만 하던 노래들을 모아서 자신이 직접 가수로 데뷔하기에 이르렀다. 싸이는 그간의 아쉬웠던 마음을 털어내며 통통한 몸집으로 독특하고 기발한 안무와 함께 ‘새’를 불렀다. 직설적인 가사에 대중은 열광했고 ‘새’는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됐다.




만약 싸이가 곡이 팔리지 않는 상황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발상의 전환을 하지 못하고, '아! 난 역시 재능이 없나 봐'하고 그냥 포기해 버렸다면 오늘날의 싸이는 없었을 것이다.


둘째, 느리고 못하는 것에 숨겨져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무언가를 배울 때 빨리 안되고 느리다는 걸 단순히 '못한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건 1차원적인 시선이요, 닫힌 사고다. 빨리 안된다는 건 내가 그 대상에 애정과 애착을 더 가질 수 있는 기회고 그 대상을 세밀히 관찰, 파악,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기차가 정차해 있을 때, 창문 너머 풍경을 무심히 유심히 관찰한 경험이 다들 있으실 것이다. 짝사랑이나 집안의 반대 등 어려움 없이 쉽게 얻은 사랑은 그만큼 쉽게 깨질 가능성이 크다. 그 사랑에 대한 소중함이나 간절함이라는 지반이 마음속에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이란 책에 <바람직한 어려움>이란 용어가 나온다. 장기적으로 보면 바람직한 어려움은 우리에게 스킬을 더 세밀하고 확실하게 알려주며 장기 기억에 남게 한다. 또 마음속에는 더 강력한 동기부여와 애착을 부여한다. 어렵게 배운 공부와 기술이 우리 내면에 더 진하게 각인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서 잘 안되기 때문에 - 그놈의 조급증 때문에 - 우리는 쉽게 좌절하고 재능 탓을 하며 결국엔 자기 비하와 포기로 이어진다.


앞서 언급한 '재능이 특출났는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재능이 딱히 남다를 게 없어 보이는 사람인데 그 분야에서 끝까지 살아남거나 괄목할 만한 성과들을 남기는 사례'의 원인이 나는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빨리, 쉽게 습득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재능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뿐만 아니라 세상이 모두 칭찬을 해대니 빨리 쉽게 하는 것이 최고이고 잘하는 것인 양 착각에 빠진다. 빨리 쉽게 하는 것은 수많은 잘하는 것의 한 분야일 뿐인데 말이다. 속주를 잘 한다고 그 기타리스트가 최고는 결코 아니듯이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재능을 쉽게 버린다. 자신에게는 그런 절박함과 간절함이 없기 때문이다.


건강을 과신하던 사람들이 절제 없는 생활로 한순간에 치명적인 병을 얻거나 부유층이나 연예인의 이혼율이 높은 사례 역시 아쉬울 것 없는 상황이 화를 불러오는 경우다. 반면 시각장애인이라 악보를 못 보는데 뛰어난 음악인이 된 경우(레이 찰스), 청각 장애가 위대한 명곡을 탄생시킨 경우(베토벤 - 운명교향곡)는 그 불편과 장애가 복이 된 경우다. 보통 이런 경우를 매스컴에서는 '장애를 극복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건 장애를 '극복'한 게 아니다. 그런 불편과 느림과 어려움이 오히려 재능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


자! 어떤가? 이제 당신의 재능 앞에 있는 이런 느림과 못함과 불편함을 사랑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가? 현실에서는 생각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단순히, 그냥 당신이 못하는 걸로 보일 수 있다. 루저로 느낄 수 있다. 그런 악마의 속삭임에 속지 마라. 당신이 사랑하는 대상 그 자체가 '재능'이라는 사실, 당신이 구축하려는 - 처음부터 잘 되진 않을 것이다. 당연히 - 그 세계 자체가 '재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못함과 느림에 기죽지 마라. 그건 아마 당신이 재능을 바라보는 360도(아니, 어쩌면 3억 6천도)의 시야에서 0.1도에도 못 미칠 것이다. 각도를 잘 잡고 찍으면 당신의 재능이라는 카메라에서 멋진 인생샷이 나온다. 분명히. 그때까지 찍는 매 순간(흐리면 흐린대로, 이상하면 이상한대로)을 즐기면서 계속 찍어 보자.




① 스타뉴스 기사 출처 :

https://www.starnewskorea.com/stview.php?type=1&no=2006092111110064098&cor_id=2006081715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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