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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Nov 20. 2023

재능은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세계다

삶의 질서를 얻고자 한다면

고 이어령 교수가 말년(2018년)에 유튜브 채널 셀레브와 한 인터뷰 내용 전문을 대화체 그대로 옮겼다.


남들이 볼 때는 "당신 직업이 열두 개나 되더라", "교수에, 장관, 행정직에, 언론인에 안 해본 것이 없잖아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상 내 인생은 굉장히 좁게 산 셈이에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 쓰고 (책) 읽고 사색하고 뭐 이런 것만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길이 나한테는 없었어요.


참 후회스러운 것이, 많은 꿈들이 있었으면 지금 다른 또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그런 꿈을 내가 갖지 못하고 '글 쓰는 것만 하겠다', '위대한 작가가 되어야겠다' 그랬기 때문에 다른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살아왔던 게 지금 생각해 보면 '나처럼 살아온 길이 한 번밖에 없는 내 생명을 정말 값어치 있게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는 거죠.


천재 아닌 사람이 어딨어? 모든 사람은 천재로 태어났고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천재성을,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남들이 덮어버려. 학교 들어가면 학교 선생이 덮어주고, 직장에 나가면 직장 상사들이 덮어주고 자기 천재(성)는 전부 가리는 거야.


그래서 내가 늘 하는 얘기가 360명이 뛰는 방향을 쫓아서 경주를 하면 아무리 잘 뛰어도 1등부터 360등까지 있을 거야. 그런데 남들 뛴다고 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뛰고 싶은 방향으로 각자가 뛰면 360명이 다 1등 할 수가 있어요.


Best one 될 생각하지 마라. Only one.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돼라. 자기는 하나밖에 없는데 왜 남과 똑같이 살아? 왜 남의 인생, 남의 생각을 좇아가냐고. 사람들 와 몰리는 길에,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냐. 그랬을 때 대담하게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길을, 쓰러져 죽더라도 내가 요구하는 삶을 위해서 그곳으로 가라는 거예요.


자기 삶은 자기 것이기 때문에 남이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걸 늙어서 깨달으면 큰일 나. 사실 난 지금 투병 중이지만, 아무리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워도 죽음은 피할 수가 없는 거죠. 젊은이들의 가장 큰 실수는 자기는 안 늙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 그러니까 내일 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늘 이 순간의 현실을 잡으라는 거죠. 마치 사형수가 하루를 살 때, 내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 그 하루가 얼마나 농밀하겠어요. 젊음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아이고 살아봤자 뭐 내일도 똑같고 모레도 똑같고, 아이고 죽자' 그럴는지도 몰라.


지금 젊음을 열심히 살아야 늙을 줄도 알고 열심히 늙음을 살아야 죽음의 의미도 안다는 거죠 '아, 그건 말로들 그렇게 하는 거지'


아냐, 내 자신이 그렇게 살았다고. 어, 내 자신이.




짜장이냐, 짬뽕이냐(짬짜면도 있고, 탕수육이나 라조기도 있다. 이미 들어온 중화요리 집에 양해를 구하고 나가서 일식집이나 한식집을 향할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조용히 냉파를 해서 집밥을 먹을 수도 있고, 편의점 삼각김밥, 한 끼 굶기 등등... 선택에 있어서 중화요리 식당이라는 한계, 외식이라는 한계,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등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많이들 깨닫지 못한다.)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삶에서도 재능을 선택해야 한다. 재능은 원래 잘하는 게 재능인데 '선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가. 그러나 선택하지 않겠다는 건 내 삶(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거기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그러면 당연히 제대로 할 수도, 잘 할 수도 없게 된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고 이어령 교수가  '글 쓰는 것만 하겠다', '위대한 작가가 되어야겠다' 그랬기 때문에 다른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살아왔던 게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된다고 말씀하신 걸 보면 후회 없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삶의 유효 기간은 참 짧기 때문에 재능 있는 분야를 깊이 팔 것이냐, 두루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 볼 것이냐도 결국 선택해야 한다. 이번 챕터에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 둘 중의 선택 문제나 어느 것이 옳거나 좋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재능을 통해 자기 세계를 갖느냐 못 갖느냐'의 문제다.


즉 어떤 분야(세계)를 깊이 탐험하거나 여러 세계를 두루 경험하거나 그 중간쯤을 유지하거나 그것이 자신(만)의 세계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자기 세계가 없는 것(사람)이다. 이어령 교수의 말씀처럼 모두가 천재인데, 마치 자기는 재능 -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애정과 구축할 능력 - 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삶, 부유하는 삶을 살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재능을 중심으로 한 자기 세계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은 과연 차이가 날까? 나는 2018년에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사건을 삶의 변곡점으로 여긴다. 내게 남은 마지막 돈과 시간과 다 날려버리고 바닥까지 떨어진 그때, 나는 죽음을 가깝게 느꼈다. 자살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이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음악이 떠올랐다. 부자가 되지 못하고 죽는 것보다 음악을 해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더 억울할 것 같았다. 확실히 그랬다.


그 후로 음악과 글이 나의 재능(정체성)이 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난 후라 해서 내 삶에 음악과 글 쪽으로 직진대로가 열린 건 아니다. 여전하고 당연하게도 먹고사는 생계 문제가 따라다녔고, 내 작곡이나 연주 실력이 갑자기 좋아질 리도 없었다. 그래도 내 삶의 중심 - 재능의 세계 - 이 정해지고 나자 여러 면에서 내 삶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고, 인격적으로도 더 성장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내 삶의 질서가 잡힌 것이다.


2018년의 변곡점 이전에는 출세, 돈, 타인의 외형적 인정, 유혹, 찰나의 재미 같은 것들을 따라 이리저리 부유하는 삶이었다면 변곡점 이후에는 세상의 바람에 잔가지, 이파리들은 흔들리더라도 뿌리와 중심 가지는 흔들리지 않는 삶이 되었다.


지금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내가 음악과 글이라는 소소한 재능으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어쩌면 앨범 발매, 타인의 인정 같은 외형적 성과가 아니라 내 삶이 견고한 질서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 질서의 뿌리는 계속 글을 쓰고 악기 연습과 작곡을 할수록 더욱 잔뿌리들을 내리는 것 같다.


나는 음악하고 글쓰는 사람이라 쓸데없는 음주를 줄일 수 있었고, 걷기와 체조로 나름 건강을 유지했으며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더 넓어졌다. 이런 것은 내가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 질서가 생겼기 때문에 - 보고 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질서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 번째가 우선순위다. 내 삶에서 뭐가 먼저고 뭐가 중요한지, 어떤 부분을 가지치기로 잘라 버려야 하고, 어떤 싹들을 키워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보인다. 두 번째는 조화다. 내게 중요한 재능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할 수도 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시간 자체가 이미 삶의 일부이자 기쁨이 되었기 때문에 조급증을 가지지 않고, 타인의 인정에 목을 매지도 않는다. 세 번째는 겸손이다. 내가 잘나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타인에게 배우고 타인과 융화하면서 내 재능을 꽃피울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재능은 내가 타고난 잘난 어떤 것도 아니고, 내가 잘나기 위해서 갈고닦아야 하는 어떤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즉 나를 높이기 위해, 내가 대접받기 위해 연마해야 하는 씨앗이거나 행위가 아니다. 재능은 내 삶에 건전한 질서를 부여해 주고, 마약 같은 소모적 쾌락의 유혹으로부터 지켜주며, 소소한 즐거움을 주고, 우정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친구 같은 존재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가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것은 내 재능이 된다. 내 세계가 된다. 우주를 탐험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주 비행선을 타거나 세계 일주를 하는 것처럼 밖으로 향하는 것, 내면의 재능과 깊이 교류하는 것처럼 안으로 향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어령 교수의 말씀처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어'란 한 마디로 자신을 죽이지 마라.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삶을 소모하지 마라.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발견하고도 모른 체하거나, 실천하지 않는 삶은 부유하는 삶이다. 방향이 없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나만의 질서도 없이, 단지 안정과 안전의 논리에만 갇힌 채 하루하루 흰머리만 늘어간다면, 킬링 타임을 하고 있다면 딱한 인생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 재능이 특출나서 많은 사람에게 돋보이고 추앙받지 않더라도, 소소하고 아름다운 질서 속에 내 삶이 안정을 찾아가고 그 그늘에 다른 누군가가 쉴 수 있다면 나는 신에게 받은 선물인 재능을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로 장사를 잘한, 칭잔 받는 종이다.




당신이 선택하고 만들어가고자 하는 세계는 무엇인가? 당신의 생애를 통해 구축하고 싶은 세계. 조급증을 낼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 재능은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이다. 그 재능과 함께 희로애락을 겪을 것이다. 그 재능 덕분에 당신은 아마도 시간을 죽이기 위해 애쓰는 노인이 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결국에는 병든 육체를 거쳐, 쇠잔한 정신을 거쳐 죽음에 이른다 할지라도 적어도 재능을 발견하기를 게을리하고, 발현하기를 꺼려 했던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오래 생명력을 누리는 삶을 살다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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