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이렇게 쉽지 않고 번잡한 것인 줄 알았다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다들 멀쩡하게 살아가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사는 게 쉽지 않다. 흔히들 평범한 직장생활이라고 말하지만 수십 년 직장생활을 하는 그들이 내 눈에는 평범해 보이지 않고 존경스럽다. 자영업자는 더욱더 그렇다. 망하지 않고 업을 이어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예체능계에서 먹고사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알바를 병행하든, 전업으로 먹고살든 예술로 수익을 낸다는 것은 또 차원이 다른 대단함으로 보인다.
회사에서 연말에 업무 확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직 통보가 없다. 얼마나 일을 던져줘서 일에 치이게 만들지 조마조마, 불안불안하다. 올해 초 시골집을 사서 텃밭 농사를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다. 과연 이 작물이 될까 하는 의구심을 품은 채 상추, 오이를 시작으로 가을에는 배추까지 심었다. 심지어 그 배추로 김장까지 했다. 파종을 하고 지지대를 세우고, 수확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유튜브로 농사짓는 법을 대충 배웠지만 시작은 늘 두려웠다. 김장은 큰일이라 더 그랬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김범룡, 최성수, 이치현이 같이 나오는 영상을 봤다. 세 분 다 기타도 아주 잘 치고, 노래도 잘하고, 곡도 잘 썼다. 당연히 나와는 다른 클라스. 싱어게인4의 김재민, 도라도 역시 월등한 재능? 능력? 아무튼. 현역가왕3의 홍자는 이토록 섬세한 감정 표현이라니... 이 모든 분들보다 능력이 못 미치는 나는 왜 음악을 할까? 좋아서? 얼마나 좋은데?
음악은 내게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출세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변명 같은 것. 물론 이것도 30~40% 정도 맞는 얘기 같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삶이 외로웠고, 그 허무한 공간을 음악이 어느 정도 채워줬다. 그건 분명한 것 같다. 나름대로 다양한 음악을 잡식성으로 들었는데, 현실의 답답함을 벗어나게 해주고, 지상계에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환상적인 세계였다. 물론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비루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음악을 듣다가 워낙 자기애가 강하고 까탈스러워서, 혹은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다가 이제는 능동적으로 만들고 싶어서 악기를 배우고 작곡을 시작한 것 같다. 지금은 Suno(작곡 AI) 때문에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악기 연주의 의미도 많이 퇴색했다.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연주를 할 정도의 실력이 안되는데 작곡 연습을 위해서, 혹은 골방에서 취미로 자기만족을 위해서 기타나 피아노를 연주하기에는 일상 속에서 시간이 별로 없다. 노력 대비 결과가 쉽게 나오지 않는 영역이 악기 연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히려 Suno에서 다양한 멜로디와 코드 진행을 생성해 보는 것이 작곡에 도움이 되는 시대인 것 같다. 그냥 작곡과 편곡 자체를 AI가 더 잘한다.
그러면 Suno로 음악 만드는 것은 쉬우냐? 그렇지도 않다. 다들 AI를 사용해서 손쉽게 음악을 만드는 시대, 콘텐츠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시대에 내 음악을 차별화시켜 주목받으려면 역시 사람의 아이디어와 손이 많이 가야 한다. 영상 하나가 알고리즘을 탔음에도 아주 천천히 느는 구독자 수를 보면 많이 답답하다. 내 음악을 알릴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기필코 기획사에 곡을 팔겠다는 꿈도 멀어진 것 같다. 프로 작곡가들이 무한정 AI를 돌리고 AI를 카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아마추어 작곡가의 데모를 기다릴 기획사가 있을까. 저작권협회는 단 1%라도 AI를 사용했다면 곡을 보류시키겠다고 하지만, 작곡가의 양심에 맡길 뿐 검증할 방법은 없는 듯하다.
나는 또 과민성대장증후군도 앓고 있다. 오래되었다. 부끄럽지만 아침에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당하다. 속이 더부룩한 게 해결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컨디션이 안 좋기 때문에 그나마 아침에 해결을 해야 한다. 이 병과 더불어 살면서 일상을 영위하고 돈을 벌고 음악을 하는 게 쉽지 않다.
또 있다. 나는 나이 60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아직은 50대 초반이라 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세월은 정말 화살처럼 빠르다. 이 나이 먹도록 돈 안 되는 음악을 붙들고 있는 나 자신이 안쓰럽고 측은하지만 딱히 더 하고 싶거나 할 만한 것도 없다. 음악 외에 하고 싶은 거라면 멋진 소설을 한 권 쓰고 싶은데, 이것 역시 돈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다.
더 있다. 친구가 없다. 물론 어릴 적 친구들,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외로울 때 전화해서 마음에 있는 얘기를 쏟아내도 될만한 친구가 이제는 없어진 것 같다. 내가 그렇듯 다들 자신의 삶에 바쁜데, 뭣하러 내 얘기로 더 짐을 지우겠는가. 내가 오랜 시간 연락을 안 했을 때 먼저 전화 오는 친구는 몇 명 안 될 듯하다.
이래서 나는, 사는 게 쉽지 않다. 병도 참고, 외로움도 견디고, 박봉과 늙음의 서러움도 애써 모른체하며 평범한 능력으로 음악을 하면서 내 곡이 알려지기 원한다. 이름이 알려져서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음악을 하고 싶어한다. 이 상태로 별 변화 없이 살다가 죽을까 봐 매우 두렵다.
외로울 땐 음악을 듣다가 심심하면 음악을 만든다. 영화는 두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게 단점이라 자주 접하지 못한다. 책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혜를 주긴 하지만 음악처럼 원초적인 감정을 해소해 주진 못하는 것 같다. 주변에서는 음악보다 글에 더 소질이 있다고 음악을 접고 글에만 집중해 보라고 조언하지만 이런 이유로 음악을 놓지 못하는 것 같다. 텍스트는 그 자체로 답답한 면이 있다. 언어화가 돼버리면 데친 나물처럼 날것의 느낌이 죽는다고 할까.
그래서 나의 '쉽지 않음을 대하는 자세'는 무어냐고? 젊었을 때는 몰아붙임, 일명 '깡'이었다. 그 깡은 언제나 조급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성과를 빨리 보고자 하는 의지의 빨리빨리 한국인. 이제는 참고 견디며 결과가 좋든 나쁘든 기다려보려 한다. 여기서 포기해 봐야 다시 원점이다. 지금도 별볼일 없지만 여기서 '못하겠다' 해버리면 별별볼일 없어진다.
뭔가 답답하지만 그래도 계속 책을 읽고, 글도 쓰고, 음악도 듣고, 곡도 만들고, 악기 연습까지 하면 더더욱 좋다. 이것이 신이 내게 주신 내 영역(고양이에게 자기의 영역이 있듯이)이지 않을까. 더, 무슨, 어떤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모두가 가수 션처럼 살 능력도 없고, 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월급 200을 받더라도 그것으로 남에게 폐를 안 끼치고, 가정을 지킬 수 있고, 음악을 해서 나와 타인에게 조금의 행복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나에게 성실한 삶인 것이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대단한 것, 잘난 것, 큰 것에 대한 동경을 버리고 인간 종족의 한계와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게 주어진 것들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 것. 이것이 현재의 내 자세다.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적절한 때가 되면 노래와 춤을 배우고 싶다. 나도 좀 발산을 하고 싶다. 노래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삶의 무거움을 자주자주 벗어버리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