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마디

by 밤새

설 연휴 동안 나름 열심히 만든 노래에 반응도 없고, 시골집에 외롭게 처박혀 있으니 딱히 안 좋은 일이 없는데도 우울한 하루하루였다. 아직 60도 안됐는데 벌써 친구도 없고, 큰 성취도 없고, 이렇게 하루하루 소일하다가 죽은 것인가 처량한 기분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몇 주 전인가 가곡을 처음 완성하고 나름 뿌듯해서 이전에 합창단으로 활동할 당시 지휘자 님과 단무장 님, 피아노 선생님에게 mp3 파일을 보냈다. 가곡이기 때문에 그들의 평가를 들어보고 싶어서. 지휘자 님은 바로 피드백을 주시고, 다음번에 곡이 완전히 마음에 드시면 편곡자도 소개해 주시겠다고 약속했다. 단무장 님과 피아노 선생님은 아무런 답변이 없으셔서 그러려니 했다. 사실 내가 만든 음악을 지인들에게 자주 보내는 편이라 한편으로 관심 없는 이들에겐 민폐라는 사실을 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 정도 눈치는 있다. 하긴 이전에 의욕이 넘칠 때는 그 정도 눈치도 없었던 것 같다. 대놓고 거부하지 못하는 내 지인들은 나의 잦은 카톡에 꽤 귀찮았을 것이다.


그래서 답변이 없어도 욕을 안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기는 편이다. 그런데 며칠 전 단무장님이 카톡으로 그때 너무 바빠서 곡을 바로 못 들어봤는데, 지금 다시 들어보려 하니 기간 만료로 다운로드가 안 된다고, 너무 죄송하지만 곡을 다시 보내줄 수 없냐고 하셨다. 사실 이건 죄송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단무장님이 내 음악을 들어줄 의무는 없으니까. 그분도 바쁘게 자기 삶을 사시는데, 유명하거나 대단한 것도 아닌 내 음악을 시간을 내서 들어줄 의무는 1도 없지 않나. 그런데도 죄송해하는 그 모습이 너무 고맙고 귀엽게 느껴져서 내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합창단 활동을 할 때도 집이 같은 방향이라고 항상 우리 부부를 집까지 바래다주셨다. 내 아내를 여동생같이 여겨서 자기가 안 쓰는 새 물건도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교수님 사모님이지만 권위 의식이 전혀 없다. 살림이 쪼들리지 않는데도 오랫동안 카페 알바도 하고 계신다.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단무장님의 카톡 몇 줄에 우울했던 내 마음이 많이 녹아내렸다.


안 지 오래되었지만 내가 뭘 하는지에 무관심하고, 나의 행보에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어릴 적 친구보다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단무장 님 같은 따뜻한 마음씨를 소유한 분의 한마디가 솔직히 더 힘이 된다. 지금 네덜란드에 사시는 지인 한 분도 이런 스타일이다. 내가 어설프게 음악과 글을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도 계속 응원을 해 주신다. 남의 일에 이 정도 관심을 가져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오랫동안 응원하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특종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을 유튜브를 통해서 보고 있는데, 왕년에 잘나가던 연예인이 늙고 병들고 가난해져서 초라하게 홀로 늙어가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렇게 볼품 없어진 그들을 찾아오는 한두 명의 친구를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또 젊은 시절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고마운 이들을 죽기 전에 찾아뵙고 싶어 했다.


쉽지 않은 인생살이에 '따뜻한 말 한마디'는 정말 큰 힘인 것이 분명하다. 가수 서장훈도 자신의 찐 팬들을 제일 소중히 여긴다고 했다. 대중에게서 멀어진 옛날 옛적 연예인들도 소수의 팬클럽이 있었는데, 그 팬들의 존재가 그들에게 굉장한 힘을 주더라.


주변에 이런 분이 있다면 귀한 인연으로 여겨 잘 모시고 인연을 이어가자.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물질까지 나눌 수 있으면 더 좋겠지. 이런 분들의 격려와 위로 때문에 내가 아직도 음악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세상 일이 의지만으로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로봇처럼 생활계획표대로,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만 움직일 수는 절대 없다.


나이 들어서 혼자 고립되기 싫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주위 사람을 챙기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고, 일시적이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온 관심을 가져보자. 그러면 훗날 내가 외롭고 괴로울 때 그들이 다시 손을 내밀어 줄 것이고, 그런 마음이 반사되어 또 새로운 인연이 우리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줄 것이다.


단무장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 때문에 나는 우울함에서 많이 회복되었고, 부족하지만 다시 새 노래를 만들어 보려 한다. 그래서 나도 노래를 통해, 삶을 통해 조금이라도 타인에게 그런 따뜻함을 전해야겠다.

이전 07화모두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