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일천한 내가 무엇을 한단 말인가?'
작든 크든 새로운 일이나 도전 앞에서 우리는 곧잘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어딘가에 공개적인 글을 쓸 때나 돈을 받고 곡을 만들 때, 나 또한 그렇다. 농사를 제대로 지어본 적이 없으니 농부의 세계를 모를 것이고, 스포츠를 즐겨 하지 않으니 스포츠맨의 세계에 대해서도 피상적으로 알뿐이다. 큰 사고나 심각한 범죄 피해자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으니 그들 심연의 고통 또한 머리로만 알거나 짐작하는 정도일 것이다. 검사나 교수, 의사의 삶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 그들만의 리그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예상 가능한 뻔한 하루 일과를 보내는 내게서 어떻게 샘물같이 신선한 글이나 음악이 나올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빠진다. 나의 세계가 좁으니 편협하고 볼품없는 글과 음악을 생산하지 않겠는가. 한편 타당한 말처럼 들린다.
최근 수개월 동안 시골집을 구하면서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여러 분야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별명이 '신까탈'인 나는 집을 구하는 일에서도 역시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다. 그런 조건들을 100% 충족하는 집은 그야말로 현실 속의 무릉도원인데, 구입 자금마저 부족한 내게 그런 집이 나타날 리 만무했다. 시골집 혐오시설이라고 하면 흔히 축사와 송전탑이 거론되는데, 마음에 드는 집(매물) 가까이에 송전탑이 있게 되면서 발전소와 변전소의 위치, 송주법(송ㆍ변전설비주변지역의보상및지원에관한법률), 위성 지도상에서 송전탑을 찾고, 주택과의 직선거리를 측정하는 법까지 알게 되었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축사 냄새를 혐오하고, 도시에서 전기제품에 둘러싸여 지내지만 전기를 도시로 보내는 송전탑은 싫어하며, 날마다 쓰레기를 엄청나게 버리지만 쓰레기 매립장을 질색하는 이중적인 인간임이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시골집을 구하면서 얻게 된 경험은 공인중개사나 건축업 종사자에 비하면 일천하지만 이 경험을 음미하다 보니 시골집 잘 구하는 팁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아이러니한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작곡하는 데 피아노 연습이 필수는 아니지만, 컴퓨터로만 음악을 만들면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리듬을 잃을까 두려워 나는 매일 피아노 연습을 한다. 내가 피아노를 연습하는 경험은 클래식 피아니스트 임윤찬이나 대중음악 작곡가 김형석 같은 분에 비하면 일천하기 그지없다. 피아노 연습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 매일 치기 시작한 이후로 빼먹은 날을 빼면 650일가량 되었다. 처음 악보의 복잡한 음표와 어려운 코드 기호를 보면 머리가 아프지만, 아주 느린 속도로 메트로놈을 맞춰 놓고 천천히 두 마디를 더듬더듬 연습하다 보면 조금씩 감이 오고, 연습 시간이 한 시간에 가까워질 때면 어느 정도 리듬을 타게 된다. 이런 반복을 2~3일 지속하면 내가 느끼기에도 그럴듯한 리듬을 타며 연주를 하게 되는데, 그때의 느낌은 마음이 정돈된 듯한 산뜻함, 멀리서는 어려워 보였던 미션을 가까이 다가가서 해냈다는 성취감, 음률의 리듬 속에 잡다한 세상 시름을 잊는 듯한 초월감 등이다. 만약 내가 피아노 연습이라는 일천한 경험을 보잘것없게 여겨 중도에 포기했다면 이런 느낌을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역시 음악은 전공해야 돼. 어릴 때 시작해야 돼. 재능을 타고나야 해' 같은 확신을 갖고 음악에 대해 마음을 닫아버렸을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우리는 우리의 일천한 경험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비싼 유럽 여행을 가지 못한다고 논두렁을 걷고 있는 당신의 여행을 하찮게 여기지 마라. 일식 코스 요리를 먹지 못한다고 8000원짜리 김치찌개인 당신의 식사를 스스로 비하하지 마라. TV에 나오는 연예인의 외모보다 못하다고 당신 배우자의 외모를 폄하하지 마라. 당신의 경험은 그 어떤 작은 것이라도 매우 소중하다. 그것을 음미하면 그것이 당신 인생의 자양분이 되고, 나아가서 인생 자체가 된다.
봉준호나 박찬욱 같은 감독이 세상 모든 일을 부족함 없이 경험해서 훌륭한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소하고 소박한 경험을 음미할 줄 알기 때문에 거기에서 색깔과 모양을 만들어 작품을 빚어내는 것이다. '나의 삶은 별 볼 일 없구나. 이번 생은 망했구나'라는 생각은 어리석다. 공짜로 주어진 행운과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삶이다. 하늘의 달을 바라보더라도 명료한 눈으로 사랑스럽게 보든지, 슬프고 아린 마음으로 보는 게 낫다. 그저 그렇고 지루한 달로 보는 마음이 최악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구두를 닦는 구두닦이를 존경한다.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 또한 그렇다. 왜 그런가? 그분들은 삶을 사랑할 줄 알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삶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일은 성숙한 인격을 갖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삶을 대하는 자세다. 당신의 경험은 소중하다. 당신의 작은 경험들은 그것 자체로 <기생충> 같은 아카데미 수상작의 소재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삶이 지루하다면 현실이 지루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당신 마음의 눈이 지루한 것이다. 지루하고 따분하고 매일 똑같은 일상이라고 느낄 수 있다. 당연하다. 그럴수록 우리의 일천한 경험들을 음미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삶은 뻔한 객관적 현상이 아니라 자각과 인식이라는 매우 주관적인 마음속 경험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강요에 의해 마지못해 피아노 학원에 앉아서 치는 초등학생의 피아노 연습과 50대 중년인 나의 자발적 피아노 연습은 다른 경험, 다른 맛이다. 그것은 잘 치고 못 치고의 기능과는 다른 영역이다.
우리의 일천한 경험들을 음미하고 모아서 저마다, 제각기 아름다운 인생 작품을 만들다 보면 삶이 보다 소풍 같이 지나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