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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Oct 11. 2020

먹는 걸로 짜증 날 때

식품 지옥

독자들이여, 먼저 말해두는데 저를 너무 불쌍하게 여기지는 마시길요.


나는 위장이 안 좋다. 어릴 때부터의 불규칙한 식사와 변변찮은 끼니가 가장 큰 원인일 거다. 변비에 과민성 대장증후군, 거기다 위가 많이 약해져서 소화도 잘 못 시킨다. 그래서 게걸스럽게 마구 먹어대는 먹방을 무척 싫어한다. 기름기 있는 음식, 육고기, 밀가루, 우유, 콩 등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고, 커피나 술 등도 위가 안 좋기 때문에 당연히 마음껏 편안히 못 먹는다. 몇 년 전에 위에 빵꾸(위궤양)가 난 적도 있다. 그렇게 싫어하는 병원을 몇 달간 다니면서 그렇게 독한 약을 몇 달간 꾸준히 먹어서 빵꾸는 때워졌다고 하는데(의사가), 위가 더 나아졌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믿음이 안 간다. 지금의 내 상태로는 공기 좋은 시골집에서 요양하면서 신토불이 음식만 소식하면서 몸을 돌봐야 하지만, 대부분의 서민이 그렇듯 나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럴 형편이 못된다.


아내는 일을 다니며 자기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반찬을 해 두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 하지만 아내도 몸이 약해서 반찬을 신경 못 쓸 때가 많다. 그러면 내가 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나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하는 스타일이라 음악에만 매진해도 시간이 부족한 요즘, 스스로 반찬을 해먹을 시간도 여력도 없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먹는 걸로 짜증이 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과일을 매우 좋아하는 나는 지력이 다해서 - 나는 이걸 '지구가 다 됐다'라고 표현한다. - 수십 년, 수년 전보다 과일이 맛은 매우 없어지고 가격은 올랐다는 걸 안다. 사과든 배든 그 특유의 맛이 점점 사라진다. 땅도 쉬게 해줘야 하는데,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는 것처럼 화학비료 등으로 쉴 새 없이 땅을 혹사시키고 부려먹으니 어찌 과일이 자연의 풍성한 맛을 품을 수가 있겠는가? 즉, 요즘은 자연식품도 맛이 없고 - 과일은 지력이 다했고, 생선은 양식이고, 고기는(닭을 어떻게 키우는지 여러분이 제대로 안다면 아마 치킨의 맛이 뚝 떨어질 걸) 매우 좁은 우리에 가둬서 사료만 꾸역꾸역 먹여서 키워낸다. 그러니 맛이 없는 게 당연하지. 심하게 말하면 그냥 사료 덩어리 고기다. 고기 본연의 맛이 없으니 온갖 양념으로 범벅을 하는 것이다. -, 인스턴트는 인스턴트라 맛(이때의 맛은 자연의 풍성한 맛을 말함)이 없다. 


나의 경우에 먹는 걸로 짜증 나는 사례를 나열해 본다.(물론 제가 시간을 투자해서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을 직접 요리해서 먹는 게 맞는 거겠지요. 그렇게 한다고 해도 선택의 폭이 너무 좁네요.)


온갖 음식이 너무 달다. 시원찮은 반찬에 대한 불만을 달래려 소주보다는 순하고, 발효주라 건강에도 좋다는 막걸리를 저녁상에 한잔 곁들인다. 그런데 막걸리도 합성감미료 떡칠인지 너무 달다. 입 버렸다. 휴~ 짜증 난다.


단백질이 땡겨서 치킨을 시킨다. 그런데 치킨조차 맛이 없다. 치킨은 식은 다음에 전자레인지에 다시 데워보면 진실한 모습을 알 수 있다. 그 닭이 원래 얼마나 냄새나는 닭이었는지, 그 냄새를 숨기기 위해서 후추와 소금을 얼마나 떡칠했는지, 위장에 결코 좋지 않은 튀김옷을 얼마나 처발랐는지.


기름에 튀긴 라면을 먹으면 후유증이 있어서 나름 멸치 칼국수를 사뒀다가 끼니를 때워야 할 때 끓여 먹는다. 하지만 면만 튀기지 않았을 뿐 오바이트 넘어올 정도로 달고 맛이 없다. 결국 반 이상 버리고 만다. 마트에서 사서 공들여 끓이느라 시간과 가스를 낭비하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보탠 걸 후회하며 식사를 끝낸다.


직장의 식당에서 고등어조림이 먹음직스러워 보여 제법 많이 담는다. 그러나 맛은 비주얼과 비례하지 않는다. 그건 고등어가 아니었다. 러시아산 무슨 고등어도 아닌 것이 참치도 아닌 것이... 아무튼 확실한 건 맛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또 나는 지구를 오염시키는 1인이 돼서 음식물 쓰레기에 한몫을 보탠다.


고기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단백질 보충 대안으로 번데기 통조림을 몇 개 샀다. 아, 그런데 이것마저 그냥 조미료 맛이다. 짜증 나는 맛이다. 고기 먹는 걸 포기하고 번데기를 택했는데, 번데기마저 어릴 때 사 먹던 그 리어카 번데기 맛만 못하다. 


아! 맛있는 거 한 끼 먹기가 왜 이리 힘이 드나? 맛없는 거 피해서 먹기가 왜 이렇게 힘이 드나?


식료품 회사와 제과 업체와 식당들은 쉽게 맛을 내기 위해, 형편없는 요리솜씨를 숨기기 위해 소금과 고춧가루와 설탕과 감미료 떡칠로 음식을 만든다. 자급자족이 안 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먹고살기 위해서 그것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식품 지옥이다. 동물의 세계는 먹이사슬이 끊김으로 먹이가 없어지고 있지만, 인간의 세계는 먹이의 양은 풍성해지고 질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소박한 시골 밥상 한 끼 먹기가 정말로 쉽지 않은 세상이다. 어쩌겠나? 인간의 자업자득인 것을. 산속에 들어가서, 섬에 들어가서 자연식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TV에서 부러워하란 듯이 보여주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공장에서 그릇 만드는 사람과 자동차 만드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도 산속에서 자연식을 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맛있는 게 너무 많아서 다이어트가 힘들다는 분들은 당연히 내 생각에 동의 못하시겠지만, 신경과 미각과 위장이 모두 예민한 내가 느끼기에 지구는 점점 식품 지옥이 되어 간다. 사실 이미 많이 진행이 된 상태다.


그렇다면 자급자족의 사회를 교란시킨, 산업혁명을 일으킨 분(넘)을 소환해서 패대기라도 쳐야 할까? 모든 게 돈으로 귀결되는 자본주의를 저주해야 하나? 아, 그러면 역시 또 문제가 너무 복잡해지고 역사와 정치까지 끌어와야 하니 그만.




혀가 소박하게 행복하고, 위장이 편안한 세상에 살고 싶다.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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