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새 Dec 19. 2020

네이버 뉴스를 볼 것이냐, 브런치를 볼 것이냐

책을 보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지만

세상에 수많은 활자가 있지만 내가 주로 보는 것 중에 순위를 매기자면 책 > 브런치 > 네이버 뉴스 순으로 가치를 높게 둔다. 하지만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자투리 시간에는 스마트폰 속 뉴스를 더 터치질한다. 뉴스는 사실 대부분 안 좋은 이야기다. 마치 '세상이 얼마나 어지러운지, 세상에 얼마나 이상하거나 비열하거나 악랄한 인간들이 많은지 날마다 상기하렴'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오염된 이야기에도 중독성이 있다. 길을 지나다 사고 현장이나 싸움판을 구경하는 심리 비슷한 걸 거다. 자극적인 유튜브 영상에 시간을 많이 뺏기는 것도 같은 이치 아닐까?


잔인한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영상이 뇌에 남는다. 시답잖은 세상의 잡소식들도 역시 뇌에 남아서, 잘 지워지지 않는 화장실 벽 구석의 곰팡이처럼 뇌의 주름 사이에 끼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정부주의자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라면과 치킨과 피자와 과자로만 위장을 채우면 몸이 상하듯 하루 동안 내 머리와 마음을 뭘로 채울 것인지도 중요한 이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아직 노인은 아닙니다만)에는 욱하는 성질에 누군가 불합리한 시비를 걸면 시비에 응했다. 하지만 지금은 되도록 피한다. 인간 같지 않은 상대에게 분노했다가 빼앗길 내 에너지와 시간을 생각하면 무응대가 최고다. 머리와 마음이라는 방은 우리가 사는 방과 비슷한 것 같다. 청소를 하지 않으면 먼지가 앉고 때가 낀다. 또 무슨 물건을 넣어두느냐,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방 꼬라지가 달라진다.


시간만 있을 땐 잡뉴스를 보고, 시간과 약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브런치를 읽고, 시간과 든든한 여유가 있을 때는 책에 욕심이 난다. 솔직한 심정은 뉴스는 최소한만 보고 되도록 안 보고 싶다.


성공에 집착했던 젊은 날을 돌이켜 보면 성공하는 것보다 실패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말하는 실패는 도전하다가 실패하는 그런 실패 말고,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나와 가족과 타인에게 입히는, 실수 아닌 실패를 말한다. 모임에 가서 내가 잘난 듯 막 떠드는 백 마디보다 친구에게 상처 줄 수 있는 한마디를 조심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말. 돈 많이 못 버는 남편, 가난한 아빠보다 사랑을 주지 못한 남편과 아빠가 실패라는 말. 


성공하기 위해서, 똑똑하기 위해서 또는 부질없는 호기심에 세상을 너무 알려고 할 필요는 없다. 50년 다 돼가는 내 삶 중 현재의 견해로는 나의 범주 안에서 충실히 사는 게 현명한 삶이다. 즉 모르는 게 약이라는, 아는 게 병이라는 말씀. 우리 피부가 투명해서 내장이 다 보인다면 음... 징그럽지 않겠는가? 예쁜 아가씨와 멋진 총각도 똥을 싸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편이 굳이 똥 싸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세상을 등질수는 없지만 세상을 너무 안지도 말고, 거절이 일상화돼서도 안 되겠지만 착한 콤플렉스에 너무 시달리지도 말고, 사람을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인위적으로 확장하지도 말고, 네이버 뉴스보다는 따뜻한 에세이 같은 삶을 살고 싶다. 그러려면 그런 쪽으로 많이 보고, 반대쪽은 최소한만 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먹는 걸로 짜증 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