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 bam Jan 31. 2023

[런던, 02] 교수님 책임지실 건가요?

사우스캔싱턴, 스티비원더, 새똥까지 교수님과의 치열한 심리전

런던에서 인턴을 지원할 수 있는 조건으로 리젠트 대학교에서 비즈니스 수업을 듣게 되었다. 비즈니스 수업 커리큘럼이 끝나면 원하는 장르의 회사로 인턴을 지원하고 면접을 보는 형식이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학교 수업을 갔고 스코틀랜드 출신 교수님을 뵙게 되었다. 교수님과 나는 둘 다 농담을 진담처럼 하는 공통점이 있었고, 그것은 누가 먼저 농담인 것을 인정하는가 혹은 진실된 감정을 표하는가의 전쟁의 발판이 되었다. 그렇게 교수님과의 치열하고 유치하고 긴 심리전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심리전의 시발점, Regularly]

심리전의 시발점은 2주 차 내 발음에서 시작했다. 교수님과의 대화 과정 속에서 나는 'Regularly'라는 부사를 발음했고 교수님께서 나의 틀린 발음을 지적해 주었다. 나의 발음은 미국 발음을 기초하고, 교수님은 영국 발음을 기초한다. 그렇기에 나는 'lar'부분에서 'r'을 확실히 소리내야하여 상당한 난이도 있는 발음(래귤럴리)을 구사하여야 하고, 교수님은 'r'을 묵음처리하기 때문에 수월하게 소리(래귤러리) 낼 수 있었다. 사실 난 나의 틀린 발음을 정정하고 인정할 수 있었지만 농담 삼아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교수님도 US발음으로 하면 상당히 발음하기 힘드실걸요?"


교수님은 실제로 발음을 하기 좀 어려워하셨고, 열심히 집에서 연습하고 오시겠다고 농담하시며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후 교수님은 비즈니스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Tongue Twister' 주제를 가지고 다음 수업에 찾아오셨고 어려운 발음으로 날 곤혹에 빠뜨리셨다.

*Tongue Twister =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 (보통 저학년들을 위한 발음 연습 재료로 쓰임)


[그래서 어디로 이사했다고? 사우스캔싱턴]

수업 메이트 중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런던에서 집을 구하기 전에 절도를 당해 수중에 있던 현금과 카드를 다 분실하여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나는 서브웨이를 사주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수업시간 그 친구가 서브웨이 원조를 받으며 되게 가난한 상태라며 농담을 했고, 교수님도 'Iceland' (영국의 가격이 저렴한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맞받아쳤다. 교수님은 그 친구가 실제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친구인지는 모르는 상태였고 농담을 통해 절도당한 기억을 위로해 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나는 그런 교수님께 이 친구가 많이 힘들어한다며 가난한 상태를 강조하고 주입했다.


추후에 그 친구는 영국의 강남으로 불리는 South Kensington에 집을 구하게 되었고, 그 집은 호텔처럼 고급스러웠다. 나는 교수님께 이 친구가 집을 드디어 구했다고 말씀드렸고, 교수님은 걱정하는듯 어디로 집을 구했는지 친구에게 물었다. 사우스캔싱턴으로 집을 구했다는 말을 듣고 교수님은 한동안 말을 잃고 서계시며 '당했다'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실제로 그 친구에게 서브웨이와 교통비를 지원했지만 교수님은 그것마저 있었던 일인지 의심스러워하셨다. 하지만 교수님께 진실을 알려드리지 않았다.

 

[스티비원더의 Lately]

사우스캔싱턴 사건 이후 몇 주의 시간이 흘렀을까? 꽤나 평온한 수업이 진행되고 쉬는 시간을 맞이했다. 평소 나는 스티비원더의 'Lately' 노래 가사를 필기체로 연습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그 노래의 가사를 외우고 있었고 그 가사를 쉬는 시간 칠판에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이 다시 시작되며 교수님이 들어오셨고 이 글을 누가 적었냐고 묻기 시작했다. 내가 적었다고 답을 하자 교수님은 네가 직접 지은 것이냐고 물었다. 5초 정도 그렇다고 대답할까 고민하던 찰나 교수님은 나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이신 후 상당히 놀라셨다. 나에게 이런 창작 능력이 있다는 것에 놀라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건 사실 스티비원더의 가사이다'라고 정정했다. 그러자 교수님은 일부러 다들리는 혼잣말을 하셨다.


"그렇지, 그랬어야만 했어, 다행이야(?)"


[심리전의 결말, 새똥]

4일간의 비가 내린 후 오랜만에 해가 뜬 날이었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우리 학교에 시크릿 가든이 있는 것을 아냐고 물으시며 오늘은 그곳에서 수업하는 게 어떤지 물었다. 모든 학생들은 좋다고 환호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가면 안 될 것 같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별일이 있겠냐며 야외로 나섰다.


실제로 캠퍼스 안 숨겨진 곳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고 우리는 큰 나무 아래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문득 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정확히 내 위에 위치한 나뭇가지에 큰 까마귀가 앉아 있었고 나는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나는 살면서 새똥을 이미 4번을 맞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태어나 처음으로 까마귀 똥을 맞았다. 앞선 4번의 경험은 비둘기 똥이기 때문이다. 나는 똥을 맞고 소리쳤다.


"f*cking bird shit on my shoulder, it's even a black bird's shit"


그러자 교수님은 엄청나게 웃으시며 진정하라며 내게 말씀하셨다.


"Get a Lotto ticket haha"


새똥을 맞았으니 나에게 로또를 구입하라는 교수님은 상당히 즐거워하셨고, 나는 이 모든 게 교수님이 야외수업을 가자는데서 비롯한 것이라며 소리쳤다.


"교수님 책임지실 건가요!?"


나는 억울해하며 내 옷을 닦으러 화장실로 달려갔고, 나의 감정은 교수님에게 완전히 노출되었다. 그것은 나의 완벽한 패배였고, 교수님과의 긴 심리전의 결말이었다. 새똥 사건 이후 명확한 패배자가 발생하였으니, 수업시간에 더 이상 교수님과 나는 농담을 주고받지 않았다.


Regent University London의 전경

Photo by Ba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