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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 bam Mar 16. 2023

[런던, 04] 한국의 이등병 정신은 글로벌로 먹힌다.

막내에서 매니저까지

런던에서 인턴 자리를 구하면서 같이 구하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아르바이트'였다.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던 이유는 크게 3가지이다. 첫 번째는 당연히 '런던의 물가'이다. 주거비, 교통비 등을 중심으로 살인적인 물가 지표를 보여준다. 두 번째는 '유럽 여행'이다. 런던 인턴 생활 끝에 유럽을 한 바퀴 돌 예정이라 여행비를 마련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는 '인턴 무급제'이다. 유럽에서 인턴십은 노동을 제공해 주는 개념보다 일을 알려준다는 교육의 개념이 더 크기에 무급 인턴십 문화가 지배적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박물관에서 일정 금액의 보상을 해주었지만 당시의 나는 보상받을지 몰랐기에 아르바이트를 적극적으로 구하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일하고 싶은 장소도 두 곳이 생겼다. 두 곳의 공통점은 '자유로움'이다. 그중 하나는 Camden에 있는 Rock bar이다. 퇴근 후 캠든에 있는 락 바를 들렸고 장발의 거친 종업원들이 나를 맞이하며 머리를 막 흔들었다. 바를 지배하고 있는 락음악에 몸을 맡기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들은 락커에 준하는 패션에 거친 수염 그리고 야생의 표정까지 겸비하며 락스피릿을 과감히 표출하고 있었다. 두 번째 장소는 Palace라는 힙한 의류 브랜드샵이다. 당시 센세이션하던 Post Malone의 White Iverson이 매장을 가득 채웠고 직원들은 노래에 심취하여 서로가 맡은 일들을 수행하고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쇼미더머니 오디션을 나갈 것 같은 그들의 표정에는 시크함과 무심함이 묻어났다. 나는 음악에 장르를 가리지 않기에 힙합과 락을 대놓고 표출하는 두 곳 모두 즉흥적으로 일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나의 짧은 비자기간으로 인하여 단칼에 거절당했다. 결국 나는 현실과 타협하여 비자 기간이 짧더라도 나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물색했고 Oxford Street에 위치한 'NAGOMI'라는 일식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일식 레스토랑을 어느 국적의 사람이 운영하냐의 히스토리를 잠깐 짚고 넘어간다면, 201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글로벌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일식 레스토랑이 기하학적으로 늘어났다. 유럽 또한 그 현상을 피해 갈 수 없었고 순수 일본인이 운영하는 일식 레스토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일하게 된 NAGOMI 레스토랑은 와다상(일본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었고 대부분 종업원이 일본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행히 짧은 비자기간임에도 와다상은 나를 고용해 주었다. 와다상의 보은을 감사함과 책임감을 가지고 이등병처럼 일함으로서 되갚기로 결심했다.




사실 나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문화를 정말 좋아한다. 어떤 것을 하더라도 한번 더 확인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꼼꼼히 일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든 정해진 절차와 규율을 성경 말씀을 지키듯이 따른다. 하지만 아주 바쁜 극성수기의 '서빙'이라는 환경 속에서는 그 특유의 차분함과 검토 그리고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것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서비스의 본질은 손님에게 최적의 만족을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에 때로는 손님의 스탠스에 맞게 융통성 있게 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정해진 규율을 어기고 살아온 문화적 배경을 반하면서까지 잡음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손님들이 가득 차 혼돈의 카오스 상태의 레스토랑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그 해답에는 '이등병의 정신'이 있었다.


군대에서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몸이 먼저 움직여야만 했다. 어떤 것을 머리로 판단하기 전에 본능으로 움직인다면 선임들의 갈굼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능도 나름 전략적이어야 한다. 어떻게 생태계가 흘러가는지 미리 파악을 해야만 본능대로 움직인 내 행동이 선임들이 보기에도 타당한 행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 나고미의 이등병으로서 우선 레스토랑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태계를 파악했고 러시아워 시간에 더 분주해지는 이유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핵심은 '일의 순서'에 있었다. 그릇이 반납되면 눈앞에 보이는 설거지를 먼저 해야 했고, 주문받은 순서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메인디쉬가 나오기 전에 바로 제공할 수 있는 주류나 사이드디쉬와 같은 일종의 빈틈을 활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 외에도 한국 특유의 '빠릿빠릿함', '자발적 융통성'이 부재했다. 나는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에 대해서 동료들로 하여금 개선하게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시키지 않아도 움직이고, 생각하기 이전에 움직이는 이등병의 행동 강령으로 스스로 해결했다. 레스토랑의 규모는 작은 편이었고 이등병 하나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동시간대 일하는 동료들이 나의 필요성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3개월이 지난 후, 어느새 난 동료들의 파트타임 스케줄까지 짜주는 매니저 역할마저 하게 되었다.




이등병의 정신은 단순히 남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특유의 '급함'은 '효율'이라는 단어로 전환된다. 오죽하면 요새 한국 회사에는 자칭 효율충이 판치고 있지 않는가. (나 또한 스스로를 극한의 효율충이라 자칭한다) 그 급함의 문화가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영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순기능으로 작용된 것은 확실하다.


영국 런던에 있는 NAGOMI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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