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교차점
유럽 혹은 북미와 같은 장거리 비행을 타게 되면 주어지는 찰나의 시간이 있다. 바로 밤낮이 바뀌는 시간의 교차점이다. 그 시간은 대략 20분 정도로 짧다. 특히나 장거리 비행에서는 어느 특정 시간이 지나면 내부 조명을 끄고 창문을 닫게 하기 때문에 이 시간을 경험하는 것은 매우 희귀하고 소중하다.
내가 비행기 창가석을 고집하는 이유도 이 찰나를 감상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이코노미를 타고 장거리 비행을 하게 되면 꽤나 고된 시간이기에 어떤 것을 할지 고민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탑승 후 바로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면 이 석양 혹은 일출 시간을 놓치게 된다.
미국으로 주기적인 장거리 비행기를 탔던 고등학생 시절, 이 찰나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언제쯤 이 시간을 만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지구는 시간당 약 1,670km로 자전하며 비행기의 속도는 평균적으로 800km로 날고 있으니까 자전하는 반대 방향으로 날게 되면 더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을까? 결론은 그렇다. 동쪽 비행 편은 지구의 자전 속도가 더해져 이 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유럽으로 가는 서쪽 비행 편은 자전을 거스르기에 이 순간을 좀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다. 비행기는 중력의 영향권에 있어서 지구와 함께 자전한다. 하지만 태양은 가만히 있으니, 자전의 역방향으로 자전속도만큼 거스른다면 이론상 한자리에 머무르게 되고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을 볼 수 있는 셈이다.
자전은 거리 대비 주행시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파리와 LA는 서울로부터 양방향으로 거의 비슷한 거리에 위치해 있다. 그 거리만큼 비행시간이 비슷하다. 다만 똑같은 거리여도 서쪽과 동쪽의 편도 비행시간이 차이 나는 것은 편서풍으로 인한 제트기류 때문이다. (비행경로의 영향도 조금 있음) 어쨌거나 특히 동쪽 편 비행기에서 이 찰나의 순간을 즐기려면 언제 탑승하는가, 그날의 일몰 혹은 일출 시간이 언제인가, 비행속도를 고려해서 그 시간대에 언제 도착하는가를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이가 이를 보기 위해서 이 복잡한 수학계산을 하고 있겠는가.
오히려 복잡한 수학계산을 대신해서 '곧 일출 혹은 일몰 시간이 오겠구나'라는 것을 하늘을 보면 직감할 수 있다. 그 시간에 자지 않고 종종 창문을 확인한다면 이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흔히 어떤 절경을 보면 'Breathtaking'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던가. 이 찰나를 맞이하는 순간 나는 잠시 호흡을 멈춘 듯 멍해진다. 왠지 구름 위를 정처 없이 날아다니는 그런 무중력 상태처럼. 그리고 바보같이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천공의 성 라퓨타를 찾는다.
Photo by B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