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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Jan 22. 2019

자유를 위한 '자유의 역설'

자유로운 인간은 행복한가?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라는 것에 엄청난 갈증을 느끼고 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이 공교롭게 들려 온다. 언제부터인가 갑작스레 사회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기점이 되는 과거는 '헬조선'이나 '탈조선'이라는 말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을 때부터가 아닐까? 이민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친구도 생겼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니 'YOLO'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너도나도 여행을 20대의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나도 거기에 휩쓸려서 워킹홀리데이를 갔었다. 그런데 여행을 가는 것도 돈이 필요하다 보니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으며, 더 큰 문제는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박탈감이다. 어떤 문제에서든지 여행을 가보지 않은 친구들은 나에게 부럽다는 말을 연신 뱉었었다. 부러움은 결핍의 자리를 가장 쉽게 드러낸다. 그런데 이런 회의감들이 사회의 기층에 점점 쌓이면서 점점 피로감을 축적하면서 '소확행'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 같다.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도 나쁜 삶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성 돋는 글귀들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일종의 암시를 통해 잠시나마 평온을 가져다 줄 진 몰라도 현실의 문제는 하나도 건드려지지 않은 채 실질적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는 원인에 대해 한 번 눈여겨 볼 필요는 있다. 예시로 든 3가지 유행어에서는 공통적으로 자유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동물원의 동물들에 대해 우선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다. 가끔 철장 안에 갇힌 동물들이 불쌍해 보인다는 말을 듣고는 한다. 특히, 갇힌 동물들이 무의미하고 정형적인 행동-불안해 하며 제 자리를 계속 맴도는-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정신적 병리 증세라고 한다. 사람들마다 이유가 어느 정도 다를 순 있겠지만 그런 동물들에게서 연민을 느끼는 사람들은 생명의 존엄성을 중요시하는 도덕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상학에서는 나의 열망을 사물에 투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둘을 분간하는 것이 그리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즉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 대상을 일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쌍한 동물들을 '동물원 철장'이라는 구조에서 해방시켰다고 해서 만족이란 것에 도달할 수 있을까? 동물 다큐맨터리를 종종 보면서 갖아 많이 들은 말은 2가지이다. 하나는 짝짓기와 나머지는 사냥이다. 특히 사냥에 있어서, 야생의 동물들은 지금 눈 앞에 있는 사냥감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내일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초식 동물들 또한 건기가 되서 풀이 자라지 않으면 목숨을 걸고 대이동을 한다. 자연 상태에서의 동물들을 생각해보면 동물들이 얻게 된 자유가 과연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니체와 다윈의 말했듯이 '투쟁은 만물의 본질'이다. 자연 상태에서 다른 종끼리 공존을 꾀하기도 하지만 '투쟁'이 근본적인 질서이다. 힘의 논리만이 지배적인 세계이다. 동물원에서 벗어난 동물들에게는 자유가 주어졌겠지만 굶거나 사냥당해서 죽는 불상사는 벗어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서로 다른 의미의 자유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인간은 동물이면서도 동물원의 동물보다 더 나은 '사회'라는 꽤나 괜찮은 공동체를 만들어서 삶을 영위하는 중이다. 너무 다행히도 원시 시대에 살았던 조상들보다는 위협에 처할 상황을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현시대는 그 여느 때와 비교해 봐도 상상도 못할 안락과 문명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을 위해 만든 사회에서 우울증은 현대인 다수가 겪는 흔한 질병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사회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즉 자유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굉장히 역설적이다. 자유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 내에서 자유를 찾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자유'라는 건 뭘까? 간단히 생각해 보면,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한 개인이 사회적 존재인 이상, 자유를 구가하는 한 명의 개인에게 무한한 자유는 주어질 수 없으며 결코 주어져서도 안 되는 것이 법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차원에서의 원칙이다. 자유는 어떤 억제도 없는 무제한적인 성격을 담고 있는 개념 같아도 어떤 구조적인 틀 내에서 지켜지고 허용될 수 있는 한정적인 개념이다. 이 역설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건 그만큼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자연에서 규범이 없는 상태에서의 자유를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홉스의 말대로 그런 상태에서의 자유가 실현되는 모습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일 것이다.


 요즘 생존 전문가들의 다큐맨터리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그곳은 가혹하며 위험하고 항상 죽음이 곁에 도사리고 있는 곳이었다. 만약 지금 도시를 벗어나 누리고 있는 환경이 사라지고 아마존 한 가운데 뚝 떨어지게 되면 과연 몇 일이나 버틸 수 있을까? 이 가정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지금 당장 생존 관련 전문 지식이라도 배워두어야 하지 않을까? 뭐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그냥 죽음을 감내하는 것이 더 편할 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면, 지금 방구석 침대 위에서 누워 스마트폰 스크린을 들여다 보면서 그런 것들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누워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 지 모르겠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벗어던 질 수는 없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문제라고 보고 있을까?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데서 시작한다는데, 왜 그런지에 대한 명쾌한 이유에 대해 알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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