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서 자유롭다는 것의 의미
생명은 그 자체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생기를 잃지 않은 모든 것들은 가치 있기를 원한다. 생명을 가진 모든 대상들은 가치를 지녀야 함이 마땅하다는 '존엄성'은 선의지적 권리로 보이지만, 존재론적으로 보편성을 띤다. 가치의 원리가 현현하는 '존엄성'은 의지적인 것이 아닌 존재적인 개념이다. 한 생명의 종인 인간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으로 존중을 받는 순간이다. 생명의 존엄성은 가장 확실하고 존재하는 개념이다. 이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 자신이 아무런 존중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선 증명해야 할 것이다.
고독의 결여는 존재적으로 타인이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나가 스스로에 대해서 존중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독한 자아는 군중 속에서도 고독함을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 고독의 이유는 자기 자신이 온전하게 수용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애써 본인의 진실한 면을 감추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나는 항상 허구적이게 된다. 나는 가짜인 삶을 살게 된다. 타인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내가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누리고 싶은 건 존재적인 자유로움이다. 내가 어느 누구 앞에서라도 솔직하고 자유분방하게 행동할 수 있다면 인간은 고독하지 않다. 하지만 애초에 '나'와 '너'의 형식 구조는 윤리 체계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 양간의 자유를 허용해주는 윤리는 개인적으로 서로 다른 둘의 결합을 꾀한다. 윤리는 형식일 뿐 내용이 선행하고 있지 않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인 존중은 상호 주관적이다. 우리가 관계에서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건 솔직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타인을 대할 수 있을 때이다. 관계의 지향은 모든 윤리의 근간에서 찾아지고 또한 존재적 가치의 의미도 이곳에 종속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나와 '나'의 관계에서도 윤리가 존재한다. 나는 '나'를 존중해야 한다. 내가 나를 존중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에 대한 존중은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를 거두고 들이고 내면성을 보존한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나를 믿는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바를, 내가 원하는 바를 나의 말과 행동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다. 나를 존중한다는 건 또한 자유롭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나의 진실성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순전한 믿음과 욕망을 도외시할수록 나는 나에게 중심이 없는 채로 존재한다. 반면에 내가 나의 주축이 된다면, 나는 분리된 채로 존재하면서 고독을 느낄만한 상황에 처해있을 지라도 고독을 느끼지 못한다. 고독은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망각하는 것이다. 인간 존재는 자기 자신에게서 향유하는 자의 본연적 실존과 열정의 근간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은 오로지 자발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들을 결정할 수 있을 때, 존재적인 가치가 누리는 함의는 증폭되고 그곳에서 행복의 심연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생각한 대로의 삶', 이것이 인간 삶에 긍정성을 찾아내는 자신에 대한 전적인 존중이고,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인간 존재의 행복을 겨냥한 정언적 명령이다.
혼자 있으면 외로울 순 있지만,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고독하지 않을 수 있다. 고독한 자아는 자유롭다. 하지만 자유로움을 통해 얻어진 시간적인 여유는 그만큼의 공백을 하루에 제공한다. 그곳은 텅 빈 시간이다. 텅 비어 있을수록 인간의 정신은 황폐한 바람이 불어오는 사막과 같이 삭막하다. 인간에게 공허는 기피의 대상이다.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면, 나의 의식은 항상 어디론가 나를 이끌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자기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이거나,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면서도 그것에게 싫증을 내고 있기 때문에 활동적이지 못한다. 황량하고 적막이 흐르는 공허에 의해 나는 온전히 나의 의지에 의존해 매 순간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공허에 계속 짓눌려 있거나 아니면 내가 나 자신을 이끌어야 할 의무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의무를 선택함으로써 의지를 통해 활동성을 갖게 된 자아는 현재의 상태를 극복하게 된다. 자신의 욕망이 향하는 곳으로 자신을 옮겨 놓는다. 그리고 활동적인 자아는 현재의 상태를 극복하게 된다. 그 속에서 나의 가치를 특별한 지위를 얻게 된다. 나의 존엄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내가 나로서 살아간다는 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