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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Sep 01. 2019

배우 '하정우'의 연기노트

자아에서의 언어가 만들어 낼 위상

 독서실 구석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배우 '하정우'에 대해 말이 나왔다. 그 친구의 말들은 배우 하정우의 연기를 극찬하는 데서 시작했다. 그 배우의 연기에 대해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스크린에서 비치는 배우 '하정우'의 연기력에 동의하는 바였고 영화를 보는 내내 항상 푹 빠져들었었으니까. 이야기의 중심에는 그의 '연기 노트'가 있었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오직 연기에 대한 고집스러운 열정 하나만으로 빼곡히 적어 놓은 노트이다. 그곳에는 어떤 장면에서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감정을 표출할 것인지, 그리고 쉽게 텍스트화할 수 없는 감정들에 대해서는 '버나드 부페(Bernard buffet)'의 그림을 그려 넣으며 감정을 이미지화했다. 그의 세심한 노력에 대해 어느 누가 비난할 수 있겠으며, 그의 연기를 보고 나서 누가 마땅치 않다고 폄하할 수 있겠는가? 노련한 과정들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냈고 그의 연기에 버젓이 스며들어 있었다는 것을 새삼 환기할 수 있었다.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역시나 내가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언어'에 대해 쓰려는 것이다. 단도직입으로 직언하자면, 언어는 주체의 자리를 선정해준다. 마치 언어가 실제로 꿈틀거리는 것처럼, 그것들은 나의 행동들로 직접 드러난다. 한 때, 잠시나마 인기를 끌었던 저서 'secret'은 유사과학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논란이 되었다. 찬반양론을 끌어 대면서 이슈화 되었고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도 있었지 않았을까? 그런데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믿어라'는 우리가 지켜야 할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사람들의 오해와 과도한 오도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다분했다. 3년 전 즈음이라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그 책에는 하늘과 온 우주가 나를 돕는다는 식의 말을 늘어놨었다. 누군가 떠오르지 않는가? 어쨌든 여기서 말하고 있는 건 언어의 마법 같은 힘에 대해서이다. 배우 하정우가 '연기 노트'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낱말 하나하나가 자신의 말과 행동을 규정짓는다. 말에는 스스로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하이데거가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말을 할 때 뱉을 수 있는 단어들이란 내가 이해하고 있는 단어이다. 듣거나 읽을 수 있는 영역이 광범위한데 반해 말하거나 쓸 수 있는 영역은 편협하게 짝이 없다. 듣는다 하더라도 그 음절들의 조합을 들을 순 있겠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항상 별개의 문제이다. 즉, 자기의식으로 언어를 스스로 사유할 수 있을 때에 세계는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드러내며 또 자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자유로움이다.


 6년 동안 일기를 쓰다가 더 이상 쓰지 않았었다. 왜냐면 그곳에는 후회와 남에게 뱉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하소연만 그득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기를 쓰는 일이 나쁘지 않았던 이유는 마지막 한 문장이 미래를 향한 다짐이어서 그렇기도 하다. 가령, '잘 하자'라던가, '할 수 있다'나 아니면 '이런 것들을 하자' 등등 이런 것들 말이다. 그리고 일기를 쓰지 않으면서 굳이 일기를 쓰지 않아도 충분히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의지를 되새김질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얼마나 자만했던 역사였고, 나는 나를 언제까지 기만하며 살 것인가? 갑작스레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와 쓰게 된 글이지만, 내 삶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고 또 못하고 있는 나에게 건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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