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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Sep 02. 2019

작은 것들의 축제

불국사 절 뒤편의 돌무더기를 보고 든 생각

 경주에 오랫동안 살았지만 불국사란 곳은 어린 시절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 있는 장소이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으면서 딱히 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가야겠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군대에서 동고동락했던 동기들이 서울에서 먼 걸음을 했다. 그중에서 한놈이 얼마나 가자고 보채는지, 그래서 마지못해 가게 되었다. 그런데 꽤 괜찮은 곳이었다. 괜스레 그런 성스러운(?) 공간에 가면 마음이 경건해지고 평온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불국사의 전경에 시선을 빼앗겨 여념 없이 둘러보다가 절 뒤편에 돌무더기를 보았다. 누가 가장 처음으로 돌을 쌓기 시작했을까? 알 수 없다. 놀라운 것은 가장 처음 누군가가 한 행동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움직이게 했다. 돌탑을 본 사람들은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자그마한 돌을 집어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나도 거기에 동참하기 위해 돌을 찾았는데 주변에 올릴만한 돌을 찾기도 힘들 정도로 깨끗했다. 그런데 또 누가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그마한 부처상을 올려 두었다. 전혀 이질적이지 않게 그 돌탑 더미들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길거리를 배회하면 항상 보이는 것이 돌이고 또 나는 그런 돌들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 돌들은 얼마나 부산하게 굴러다니고 보잘것없는가? 저 돌도 풍화되어 언젠간 인식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가루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자연스러운 섭리는 아무런 목적도 의도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그런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 모여 있으니 거기로 자연스레 눈이 간다. 섬세하고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으니 그 또한 생경한 광경이 되고 볼만한 구경거리가 되었다. 모든 것들은 이렇게 사소하게 시작되지 않았을까?


 비가역적인 시간의 흐름만 봐도 그렇다. 인간은 너무나 똑똑한 동물이라 과거를 돌아보면서 후회하고 또 미래를 생각하면서 불안해한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항상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울에 비친 상도 점점 더 주름이 늘어가고 살은 쳐져간다.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모든 것들이 점점 흐드러진다. 우리의 몸도 망가져가고 모든 것들은 분해되고 결국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원래 시간의 흐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계가 짹각거리면서 특정한 숫자를 지칭하고 있지만 그것 또한 변화를 시계라는 기계장치에 담아둔 것뿐, 현재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옳은 말로 보인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스치듯 지나가는 문구가 머리를 둔중하게 울린다. '깨달음과 어리석음은 같은 것이다' 무엇을 깨닫는 건 어떤 대상들, 즉 개념화될 수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아무리 무언가를 깨달아버린다고 한들, 어떤 무언가를 많이 생각해서 뇌에 지식을 끊임없이 주유한다고 한들, 어떤 것을 더 알 수 없다고 확신할 수 있겠으며 어찌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을까. 괴테의 저작인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가 더 이상 무언가를 알 수 없다는 데에서 느낀 괴로운 허무와 회의의 깊이가 또한 자신의 어리석음이었지 않았을까. 그 결과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이고. 한낱 빛이 어찌 심연의 깊이를 알 수 있으리. 진작에 생각하기를 그만두는 것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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