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늦가을, JTBC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서
러닝화를 다시 꺼내 신은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마지막에 무릎이 고장 나서 걷고 뛰기를 반복하느라 기록도 아쉬웠지만
그보다 더 큰 건, 목표를 이루고 나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공허함 때문이었다.
마치 도착한 기차역에 내렸는데, 다음 행선지가 정해지지 않은 그런 느낌.
달리기를 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뛰는 걸까.
기록을 세우기 위해? 다이어트를 위해? 아니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목표를 잃는 순간 발도 멈춘다면,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하는 걸까.
계속 달리게 하는 건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얼마 전, 날씨가 유난히 좋았던 주말이었다.
날씨가 좋아서였는지, 공허함이 조금은 아물었는지,
그냥 다시 달리고 싶었다.
오랜만에 러닝화를 꺼내 신고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나갔다.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고, 피크닉 나온 사람들로 공원이 북적였다.
속도도 거리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발을 굴렀다.
선선하고 간질간질한 봄 냄새, 발바닥과 아스팔트가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조금씩 느껴지는 호흡 리듬.
그렇게 정신없이 여의도를 두 바퀴나 돌았다.
몸은 확실히 힘들었다.
다리에 뻐근함이 밀려오고 이마엔 땀이 맺혔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신은 맑았다.
무겁던 생각들이 조금은 정리된 것 같고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뛰고 나니까 '조금 괜찮아졌다'는 느낌.
그리고 아주 괜히, 묘한 자신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냥, 마라톤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기록을 세우는 것도,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것도 물론 멋진 일이다.
그런데 그걸 좇는 동안, 달리는 순간의 작은 즐거움은 종종 놓쳐버리곤 했다.
속도나 목적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발을 구르는 것도 괜찮구나 싶었다.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다.
예전엔 성취나 기록의 목적이 강했다면
지금은 그냥 일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고 싶을 때 달린다.
머릿속이 복잡할수록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에겐 이게 도전이고 성취일 수도 있지만
요즘 나에게는 잠깐의 명상을 위한 수단이 된다.
그저 달리고 나면 기분이 조금 더 괜찮아진다.
그게 내가 계속 달리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