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오펜하이머
영화 리뷰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람 감독이 연출한 12번째 영화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원자 폭탄을 만들기 전과 후로 나뉘어 진행되는 전기 영화다. 자칫 많은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고 역사적인 사건들과 맞물려 진행되는 이야기라서 사전에 알아야 할 것이 많이 부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모르고 본다고 해서 재미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관련 내용을 자세하게 알고 있다면 재미에 플러스가 되지만, 모른다고 해서 관람하는 데 있어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
인간의 자만심을 스크린으로 표현한 파괴적인 초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는 충분히 지루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고 재미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각 인물의 서사와 대화, 작중 행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야기는 오펜하이머의 경력을 초기부터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비선형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보안 인가 갱신을 놓고 열린 청문회를 중심으로 과거의 기억들과 맞물려 진행된다. 스크린에 풀어놓은 퍼즐이 어떻게 합쳐져서 보이는지 긴장감이 느껴지는 연출로 그려졌다. 킬리언 머피는 자신의 창조물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한 남자의 발가벗겨진 영혼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역시 일생일대의 연기를 통해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추락하는 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복잡하게 짜인 플롯 속에 빛나는 인물에 대한 연구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한 스트로스는 겹겹이 쌓인 등장인물들을 무대 위로 올려놓는 역할로 킬리언 머피만큼 중요한 역할이다. 다양한 타임라인에 걸쳐쳐 출연하는 에밀리 블런트, 플로렌스 퓨, 라미 말렉 등의 연기는 사실성을 더하면서 큰 변화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을 파고든다.
이야기는 누가 잘 따라오는지 아닌지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킬리언 머피는 오펜하이머 그 자체가 되어 버렸고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원자처럼 혁신과 흥분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창조의 역사로 세계의 역사를 바꿀 그것이 결국 인간을 파괴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결코 멈추지 않고 단념하지도 않는다. 언제가 찾아올 종말의 악몽이 그를 괴롭히지만 두려움 앞에 당당히 맞서고 자신이 만든 세상의 결말에 당당하게 맞선다.
놀란 감독의 연출은 역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때론 불쾌감을 주기도 하고 엄청난 충격으로 흥분을 일으킨다. 공포는 절망으로 바뀌고 모든 서사가 응축되어 폭발하는 마지막 1시간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경의감마저 느껴진다. 원자폭탄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끔찍함과 함께 홀로 그 영향에 맞서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 들이는 한 인간의 이야기다.
새로운 세상의 창조와 그로 인해 짊어져야만 하는 숙명을 받아들이면서 황폐하되는 사람의 이야기. 프로메테우스가 된 과학자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심 가득한 이야기는 놀란 감독은 필름을 사용해 파괴적인 초상화로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