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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딴따라 Feb 02. 2022

나는 나의 유품정리사입니다.

미련없는 내일을 위한 웰다잉

이사나 집안 행사를 치러 본 사람은 소용돌이가 지난 뒷정리에 얼마나 많은 손이 필요한지 안다. 요리하는 셰프의 뒤엔 보조자가 필요하고 둘이 시작한 연애가 이별로 끝날 때 사랑의 기억을 지우는 일은 남겨진 자의 몫이다. 얽히고설킨 사연이 주연이 되고 추억이 조연으로 사라지는 인생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새로운 물건이 야금야금 공간을 잠식한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뭔가 싶어 꺼내 보면 한때 그토록 소중했지만, 어느새 잊혀진 보물이다. 계절마다 옷장을 정리하며 생각 없이 새것을 들이지 않겠다 다짐하고도 먼지처럼 한 칸을 차지한 신상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사람이 죽고 가까운 이들의 애도가 끝난 뒤 맞닥뜨리는 현실이 있다. 개명만 해도 사용한 모든 흔적을 바꾸는 데 여러 달이 걸리는데 하물며 사람이 사라진 자리를 정리하는 일엔 얼마만한 수고가 따를까. 인생의 잔해로써의 유품을 분리 수거하듯 치우는 일은 쉽지 않다. 헤어진 슬픔 위에 그의 자취를 손수 지워야 하는 잔인한 아이러니에도 불구하고 떠난 자의 공수래공수거는 남은 자의 수고로움으로 가능하다.


2년마다 발령지를 옮기는 탓에 개인 소지품을 담은 상자를 서랍에 두고 사용한다. 전출 때엔 상자만 가져가면 세상 가벼운 이사다. 사용하는 필기구는 샤프 겸용의 4색 볼펜 하나, 퇴근하는 책상은 발령 난 자리처럼 치다. 언제든 떠남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부재어느 날 기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먹방과 부자 되는 프로그램처럼 '잘 죽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방송이 있다면 유용하겠는데 왜 없는지 의문이다.



내일과 모레도 당연히 살아있을 거라 장담하는 우리는 무모하고 용감하다. 미움과 분노 같은 어두운 감정을 매일 청소하지 않는 건 시간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갑작스러운 마지막을 두고 험한 말로 똥 냄새를 풍길지 고운 말로 자신의 향을 만들지는 선택이다. "싫어. 미워"라는 말을 하지 못해 한이 되진 않지만 좀 더 사랑하지 못했다며 후회하는 게 사람이다. 갖고 싶은 욕망에 자꾸 물건을 사는 건 당신의 가장 가까운 이에게 못 할 짓임을 알아야 한다.


산다는 건 죽기 위한 일 보 전진이니 유서같은 일기를 쓰고 기도하며 매일 아침 해가 뜨는 기적에 감동해야 한다. 사랑하는 이와 무사히 맞은 저녁을 감사하고 살아낸 오늘이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국으로의 이삿짐을  진  동행자다.


유품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나의 사소로움을 덜어 사랑하는 이의 수고로움이 가벼워진다면 꽤 괜찮게 사는 방법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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