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 별다를 바 없는한낮의 쨍한 햇살을 뚫고 기습처럼 과거가 찾아온다. 기억의 보따리에서 나온 회상은 순서가 없다. 그때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 떠오르는 표정이 맞는지잘 모르겠다. 비가 왔었나 아니 오다말았나 혹은 밤인지 초저녁인지 배경도 바랜다. 하지만 그때의 감정은 여실하다. 아파서 가슴이 멍들 것만 같던 먹먹함, 어쩔줄 몰랐던 두려움, 겁에 질려 이불을 지리던 소녀의 캄캄한 밤부터 설렘과억울한 몸부림, 미워서 살기까지 느꼈던 어떤 날들.강도는 달라졌지만, 그때의 감정은 고스란히 화석으로 남았다.
언제부턴가 잠들기 전에 인스타의 아기 영상을 본다. 쪽쪽이를 빨며 자는 터질듯한 볼살과 반짝이는 눈망울에 버둥대는 사랑스러운 몸짓을 보면 지끈대던 머리가 맑아진다. 동영상을 보다 생각 스위치가 꺼지면 한결 가벼워진 눈꺼풀을 감곤 했다. 이런 처방 말고도 잠들기 어려운 날 한 잔이 생각날 때가 있다. 평소 접하지 않는 알코올이지만 유독 한 잔이 땡기는 날이다. 안타깝게도 한번 가슴 통증이 온 이후론 일 년에 한두 번 먹던 한 잔마저 금지됐다.
온전한 내 편을 붙잡고 보따리 풀듯 나를 고백하고 싶을 때, 하필 그때 혼자인 경우가 있다. 무릇 인생은 혼자라는 지당한 이치에도 사회적 동물로서의 '내'가 사람이 갈급한 타이밍이다. 그날따라 상황이 홀로일 수밖에 없는 날, 나의 신을 찾는 게 마땅하지만 그마저 무기력해질 때 고스란히외로움을 체득한다. 그런데도 제법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사는 나는 어른 놀이 중이다.
비까지 오면 최악이다 했는데 창밖에 선뜻 눈비가 내렸다. 지독한 날이 있으면 따뜻한 날도 있겠지. 나이 먹어 알게 된인생의 순리에게투정을 부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