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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딴따라 Oct 20. 2021

삶의 우승자

마음은 진화하지 않는다

한동안 짧은 단문도 어려웠다. 무지한 글공부도 그렇고 얕은 관찰력과 영감은 몇 꼭지 끄적이면 바닥이 드러났다. 연료 계기판 끝을 맹렬히 가리키는 화살표를 살리기 위해 빈 지갑과 돌아갈 거리를 계산하듯 소진된 정신은 안절부절못했다. 밑천이 없으니 퍼 올릴 사유(思惟)가 부재하고, 하릴없이 소설을 읽다. 사람 이야기가 필요했다.


생각할 능력을 잃은 뇌는 물렁한 스펀지가 됐다. 즉 시작한 노안에 맞춘 다초점 안경으로 책을 보는데 글자가 흔들거린다. 띄어쓰기로 열 맞춘 단어가 엉뚱하게 해체되고 붙더니 넷째 줄에서 시작한 시선은 어느새 일곱째 줄 중간에서 허우적댄다. 할 수 없이 소리 내어 읽는다. 가재도 게 편인가. 가는귀먹기 시작한 귀가 제 입으로 낸 소리엔 얼마나 명명하게 듣는지 모른다. 목소리가 갈라지면 다시 눈으로 읽다가 또 글자의 숲을 헤매면 자를 대고 한글을 처음 익히는 할머니처럼 천천히 읽는다. 젊은 날 속독을 자랑할 때 코 끝에 안경을 걸치고 몇 장을 못 넘겨 책장을 덮는 사람이 의아했는데 지금 내가 딱 그 모양이다.    

      

해가 어스름해지면 유독 사위가 좁아져 갑갑하다. 백내장 탓이다. 오늘 저녁 동네를 걸으니 가로등과 네온사인, 아파트의 불빛이 포송포송한 눈송이로 퍼져 있다. 어둠에 부딪친 빛이 건물과 전깃줄 위에 붉고 노랗게 깜박이는 게 어릴 적 반짝이를 붙여 만들던 크리스마스 카드의 풍경 같았다. 예뻤다. 차암 예뻤다. 자세히 보이지 않으니 저만치 있는 사람의 무뚝뚝한 표정과 화난 얼굴을 건너뛸 수 있고 버려진 오물의 지저분함을 대충 넘어가니 노안도 좋은 구실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었다. 쉽지 않고 재미나 긴장감 있는 사건 하나 없건조한 문체는 사람 얘기뿐이다. 주인공은 유약한 지식인, 주변 인물은 우리 주위의 평범한 이웃으로 흔하디 흔한 마음 이야기다. 그런데 백 년 전의 그들과 지금의 우리가 어쩌면 변한 게 하나 없는지 모르겠다. 역시나 마음은 진화하지 않는다.     


읽고 나니 오랜 포만감이 밀려온다. 즉흥적인 에세이라면 백오십 살이 넘은 노인 작가의 넋두리였겠지만 지금 읽은 건 소설, 자그마치 백 년 전의 이야기다. 사람이라서 갖는 감정, 의식, 지성, 믿음, 그중 하나라도 온전하고픈 열망과 좌절이 책 속에 흥건하다. 죄와 무죄 구분을 헝클어 놓는 본능이란 놈 때문에 우는 인물은 가상이 아니라 현실다.        


이제는 시간을 들여 두어 번은 읽어야 책 하나를 완독하고 기억할 수 있지만 몸에 좋은 현미밥을 먹는 기분이다. 꼭꼭 씹어 글자의 단물을 삼키고 필사를 곁들이니 건강해지는 듯해 기쁘다. 삶의 지혜는 지식이 아니라 인생의 소소한 순간반짝이는 찬란함을 아는 데 있다. 




새벽에 잠드니 내일 아침은 노곤하고 낮 동안 게으름 피울지 모르겠다. 괜찮다. 살아보니 적당히 사는 일이 허락되는 시기가 온다. 젊을 때는 달리지 않는 시간이 아까워 억척스레 쪼개어 살았는데 뛰어가든 걸어가든 최종 목적지에선 눈 어둡고 귀먹은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는 동안 무얼 알았는지 보따리를 풀라 했을 때 자기 삶의 기쁨을 하나라도 찾은 사람이 있다면 그가 우승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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