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는 설사하지 맙시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털보 과학자의 58가지 유쾌한 과학 수다.
'매머드 화석 가격이 폭락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후 얘기부터 '만국의 탈모인들이여 연대를!', '내 북극성은 누구인가' '수영장에서는 설사하지 맙시다' '프랑스 엉덩이를 훔쳐라'까지 과학책이라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챕터들이 있다. 에피소드 안에는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해했을 법한 질문을 과학이라는 도구로 풀어준다. 재미지면서 논리적인 이야기를 술술 읽다 보면 어느새 전문적인 지식에 성큼 다가선다. 읽는 중간에 작가의 얼굴을 보려고 표지를 들추게 된다는 사실은 비밀아닌 팩트!. 역시 진정한 고수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전달한다.
문과적 인간인 나는 <코스모스>가 힘들었고,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같은 문과형이어도 저자 유시민 님과 지식의 출발선이 달랐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훌륭한 책을 읽다가 무슨 무슨 공식이라는 게 나올라치면 피로가 밀려온다. 다행히 이 책은 통쾌하게 읽을 수 있다. 길이는 짧지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과학 장치가 있고, 즐거운 수다이면서 문제의식을 일깨워준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잔잔한 인터뷰 같다면 이 책은 자유분방한 토크쇼 같은 느낌.
인류의 송곳니가 작아진 이유가 싸움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으면 인류 타락성에 질리면서도 조금은 따뜻한 믿음을 갖게 한다. 일본 돌고래의 날이라는 챕터에서 이 날만큼은 일본을 향해 최대한 세게 욕을 해야, 그렇게라도 해야 일본인은 움직인다라는 털보 과학자의 인간적인 면모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소설이 주인공, 플롯을 말한다면 과학은 수소, 원소라 표현할 뿐이고, 서스펜스 대신 데이터로 시작할 뿐, 결국에는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를 이야기한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과학적 태도야말로 인문학적이고 사람다운 태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과학, 어렵지 않다. 과학 공식이나 주기율표 따위는 전공자에게 넘기고 논리와 증거가 어떻게 내 삶에 연결되는지 안다면 최소한의 과학 문해력을 가질 수 있다.
겸손함이란 자신의 본능과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것이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 기존의 생각을 버리고 바꾸는 태도다. 여기서 과학 문해력이 생긴다.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아주 작고 간단한 일, 예를 들어 하루에 10분을 할애하거나, 또는 한 달에 만원을 쓰거나 아니면 어느 장소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냥 내가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도움이 된다면, 수소 결합 같은 삶을 살면 좋겠다.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에 영향을 미친 유일한 조건은 '시간적 여유'였다. 바쁘다는 게 선을 행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려면 일단 넉넉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과학적인 심리 실험의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