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양형 이유

낮은 곳에 대한 시선은 부유하면 안 된다.

by 낭만딴따라

낮은 곳에 대한 시선은 부유하면 안 된다.

내가 그들과 동고동락할 수 없더라도 시선만큼은 낮아야 한다.

그 시선은 그곳에 오랫동안 정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낮은 사건들은 발아래로 모두 지나가고, 나는 그 사건을 무감하게 흘려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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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통해 본 법정 '형량'을 보고, 분노와 이해할 수 없음을 느꼈다면 권하는 책.

법으로는 말할 수 없던 생각을 양형 이유로 적는 판사들의 무게를 조금은 경험할 수 있다.


가정 폭력, 산업 재해, 성범죄, 사회적 편견의 사건들을 접한 판사가 내리는 차가운 결론뒤에 인간적인 고뇌와 치열한 고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계적인 법 적용이 아니라, 법의 테두리에서 피고인의 사정, 울분 그리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고려하여 '왜 이 형량을 내릴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한다. 피고인과 피해자 모두의 맥락을 고려해 '최고'가 아닌 '최선'의 결론을 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과 왜 법이 소수자를 보호해야 하는지를 역설한다.


특히, "타인의 몸을 자유롭게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타인뿐이다", "'삶이 있는 저녁'을 걱정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 다수 존재한다는 현실은 서글프다" 등 실제 판결문을 통해 피도 눈물도 없는 법의 차가운 잣대속에 인간의 고통을 드러내려는 노력이 보인다.

people-2608145_640.jpg 픽사베이
세상이 평온할수록 법정은 최소한 그만큼 참혹해진다.
사람의 생명을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의 숫자로만 파악하는 부도덕한 기업에게는 손해배상과 더불어 징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정은 선악의 공론장이 아니다. 선악은 양형에 다소 참고될 뿐이다.
순전한 인류애보다는 이기심이 솔직하고 더 견고하다. 연민에 호소한 기부 광고보다 소득 공제를 해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무엇이 고상한 답변인지를 가리는 장이 아니다. 무엇이 소수자룰, 아니 우리 모두를 더 효율적으로, 더 오래, 더 견고하게 보호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정의와 힘은 동시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가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의가 되어야 한다. 정의는 시비의 대상이 되기 쉬워나, 힘은 시비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정의는 강해지기 힘들다. 결국 강한 것이 정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