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좋은 사람
죽음은 삶이 최고로 익은 모습이다.
오십. 끝없이 달릴 것 같던 삶의 반을 넘자 죽음이 떠오른다. 살아갈 날과 살아온 날이 비등해지자 과거를 회상하고 남은 날을 계수하는 일이 익숙해진다.
우리가 젊은 사람에게 자꾸 꿈을 묻는 건 나이 든 지금까지 찾은 답이 애매하기 때문이 아닌가. 만약 젊은 친구가 똑같이 반문한다면 그건 남은 삶을 매듭짓는 방법을 찾았냐는 뜻일 게다.
어떻게 죽을까는 어떤 사람이냐이다. 이름까진 남기진 않아도 자신의 존재가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봐야 한다. '열심히 살았어요.' 그걸로 충분하지만 뭔가 인간다움의 한 부분이 허전하다. 유키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일반인의 인터뷰가 인기 있는 건 우리 모두가 겪은 지난한 생을 고민한 흔적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삶에서 살 만한 이유를 찾은 사람의 눈빛과 미소 덕에 종종 숨통이 트인다.
죽음의 디데이란 말이 언짢다면 외면하고 싶은 심리 탓이다. 그래도 영생이라는 특혜 없이 모두가 시한부 생명이니 참 기분 좋은 평등이다. 죽음 앞에선 누구의 삶이든 소중하니 잘 죽자는 말이야말로 무궁한 대화거리이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떨어지면 행복은 쉽다.- RM"
행복을 만드는 사람과 찾는 사람이 있다. 불행을 끌어당기는 사람과 버리는 사람이 있다. 일이 안될 때 그럼 그렇지라며 불운을 얹는 사람과 괜찮다며 유턴하는 사람이 있다. 구덩이에 삽질을 더하려는 불행과 이참에 물길을 바꿔 행복으로 만드는 결정은 평소의 삶의 태도가 결정한다.
다르다는 이유로 날 선 말과 화를 발산할지, 인정과 공감의 말을 할지는 선택이지만 한창때를 지나 거기서 거기인 노년에 자신을 찾을 이가 있을지 떠올리면 선택은 쉽다.
만약 가까이에 있는 사람 때문에 자꾸 피로하고 화가 나면 잠시 떨어지자. 퍼내도 끝없는 기쁨이 충만하다면 모를까 그래도 어떻게 그래라는 주저함은 자신이 바닥날 수 있는 위험한 오지랖이다. 사는 건 관계 유지를 위한 버티기가 아니라 행복을 만드는 일이다.
선함은 챌린지 된다. 무료로 배운 악기가 어느 수준이 되자 나 역시 받은 대로 가르쳤고, 연습용 악기는 대를 이어가고 있다. 나와 같은 아마추어 딴따라가 꼬리를 이어가면서 사소한 은혜가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누구나 선한 씨앗 하나씩을 품고 있다. 가진 게 없다지만 살아있어 자유롭게 움직이는 몸과 정신이 있으니 기본은 갖췄다. 스스로에게 성실하고 남에게 정직하다면 선행은 시작됐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좋은'을 구별하기 위해 좋은 말을 하다 보면 생각이 말을 쫓아 좋은 행동을 하고 좋은 인생을 만든다.
삶의 한 꼭지를 이룬 사람은 자신뿐 아니라 이웃과 사회로 확장한 꿈을 꾼다. 자신의 기운이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안다면 어떻게 죽을지의 방향은 뚜렷하다.
인생 한 번 태어났으니 가성비 좋은 사람으로 살다 가는 것도 또한 즐겁지 아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