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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딴따라 Aug 20. 2021

예민주의자의 당부

내가 예민하니까 네가 사는 거야

억울한 가슴에선 종종 피 냄새가 나는데, 미소 짓는 이에게선 단내가 난다. 향이 나는 사람과 잠시 나눈 대화후엔 창백한 심장에서 꿀이 흐른다.


화가 치밀 때는 당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상대의 평소 철학과 몸가짐이 가히 이성적인지 살펴야 한다. 배알이 꼴리지만, 상대의 일반 상식이 정당하다면 문제 풀이는 간단하다. 나의 상식에 문제가 있거나 가볍게 시작하다 빠져나오지 못한 감정싸움이다. 만약 상식과 감정이 도화선이 아니라면 가엾게도 사랑의 부재가 원인이다. 그게 상대이든, 나 이든.  

  

사랑은 색을 잃으면 공격성이 남는다. 그런 상대에겐 '당신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걸 먼저 보여줘야 한다. 사랑을 잃은 내상자를 함부로 고치거나 이기려는 어리석음 따위 버리고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친절만 내밀어야한다. 누구나 상처 입은 짐승인데, 섣불리 나는 사람이고 상대는 짐승이라고 단정하는 교만 때문에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 상처가 아물어 덧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는 것,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다.  

      



우리는 아주 쉽게 불행하다. 행복을 찾은 순간부터 습관적으로 불행을 떠올린다. 상처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상처를 준 기억에서 발현되며 반복되는 이별과 불확실한 미래는 도무지 익숙하지 않다. 나만 마음을 열었다는 박탈감에 적당한 관계가 최선이라는 소심한 결정이 잘못은 아니다. 상대에겐 가볍지만 내겐 무거웠던 사연 보따리는 차고 넘친다. 이정표가 들쑥날쑥한 길과 그럼에도 해야 한다는 책임감, 하지 않으면 괴로운 고약한 자책은 심장 구석에서 팔딱댄다. 부지런히 뛰어도 도착하지 않을 것 같은 생의 거리를 달아나려는 순간, 바로 그때 난데없는 응원 한마디에 우린 용기가 난다.    


소심한 평화주의자가 있어 열정 주의자가 빛나며, 세상에 존재하는 떨림에 대책 없이 예민한 덕에 무관심과 가려진 상처를 잘 찾는다. 평화는 예민한 이의 전 감각에서 시작한다. 스펀지처럼 생의 모든 존재를 흡수하는 통에 감정이 후다닥 소진되어도 입 꼬리를 올린 미소 하나로 회복된다. 세상의 발자국을 눈여겨보는 예민한 우리가 있어 당신이 잘살고 있다.    

하지만 친절이 의식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은 자신에겐 학대자다. 예민한 우리는 때때로 불친절할 거고, 그럴 때 당신과 우리 사이에서 이번엔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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