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의 소회
몽골 여행의 마지막 날, 호스텔 방이 없었고(럭키!) 6박 7일간의 여독도 풀 겸 중가의 호텔에 묵기로 했다. 고작 6만 원 남짓으로 예약했던 호텔방에 들어서는 순간 감동이 몰려왔다. 방에 더블침대와 푹신한 흰 침구가 있다니, 더 이상 말 냄새인지 젖은 지푸라기 냄새인지 모를 퀴퀴한 게르의 냄새를 방지하기 위한 침낭을 깔지 않아도 된다니!
깨끗하고 온수가 콸콸 나오는 화장실을 발견했을 때도 할렐루야를 외치고 싶었다. 오늘은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주섬주섬 두루마리 휴지를 챙겨 핸드폰 후레시에 의지해 저 머나먼 공동 화장실로 향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새로운 게르에 도착하자마자 이번엔 따뜻한 물이 잘 나오는지 챙겨 물어보는 것도 이제 끝이구나. 샤워할까 말까 내 안의 깨끗한 나와 귀찮은 내가 벌였던 치열한 눈치 게임이 이제는 끝이 났구나!
이렇게 적자니 몽골 여행이 끝난 걸 축하라도 해야 할 것 같지만 천국 같은 침대에 누워서 곰곰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진해지는 건 '그리움'이었다. 불편하고, 냄새나고, 휴대폰이나 인터넷 같은 문명의 혜택이라고는 게르 공동 샤워실의 따뜻한 물처럼 찔끔찔끔 맛볼 수 있지만 그래도 난 26살 여름의 이 몽골을 평생 그리워할 게 분명하다. 사방을 둘러봐도 끝이 없는 광활한 초록 평원도, '나를 찾아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하늘을 쭈욱 가로질러 떨어지는 별똥별도 소중했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건 역시 동행들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새 4년 차,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설렘보다는 피로로 느껴질 무렵 떠난 여행이었다. 마냥 사람을 좋아하고 궁금해하던 나였는데 언제부턴가 기대보다는 걱정으로 사람을 대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소중히 여겼던 관계도 허무하게 끊어질 수 있으며, 기대하지 않을 때 덜 상처받는다는 것을 배운 후였지 싶다. 그러나 몽골에서의 동고동락 경험은 그 모든 상처에 대한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역시 사람이 가장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걸 알려주었다.
매일 평균 6시간을 달리는 여정이 지루하지 않았던 건, 그 시간이 각자 다른 모양의 삶을 살던 동행들을 알아가는 또 다른 여행이기 때문이었다. 널 힘들게 하는 게 무엇인지, 너는 어떤 사람인지, 너의 꿈은 무엇이고 무엇을 사랑하는지. 우리는 내내 밀도 있게 서로를 배웠다.
주룩주룩 비가 와 계획된 목적지를 갈 수 없던 어느 날도 함께라 우울하지 않았다. 비가 오면 뭐 어때, 우리는 축축한 게르 안에서 (베가스 룰이 아닌) 부산 남천동 룰의 카드 게임을 배웠고, 딱밤을 걸고 집중력을 불태웠다. 그리고 비가 그친 후 초원 위 하늘에는 쌍 무지개가 떴고,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가 하늘을 만끽했다. 우리는 함께 비 오는 하늘을 위로했고, 지루할 법했던 시간들을 어떻게든 즐겨냈으며, 결국 선물 같은 하늘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비록 헤어지고, 매일의 출근과 주말의 데이트, 챙겨야 할 사람들과 우선하는 의무들 때문에 살면서 또 볼 수 없다고 해도 이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행이 끝난 지금, 나는 게르 안에서 몇 번이고 들으며 리듬을 탔던 strong j 오빠의 플레이리스트를 흥얼거리고 있고, 입에는 어느새 오빠의 단골 추임새가 붙었다. 'kill the shit!'
유디 언니와 함께한 몽골 작곡 프로젝트 덕에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음악의 마법을 알게 되었고 난 이제 어떤 음악도 허투루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안엔 분명 사람들이 지나온 마법의 순간이 깃들어있을 테니까.
몽골에서의 순간을 잊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던 가사, 진심을 멜로디에 실어 노래할 때의 설렘, 함께 리듬을 타며 느끼던 일체감 같은 것이 말이다.
우리의 인생이 겹쳐지던 18년 여름 몽골의 일주일은 그리운 음악으로, 보고 싶은 얼굴들로, 힘들 때 떠올릴 수 있는 밤하늘의 모습으로 내 삶에 자국을 남겼다. 나는 때로 이 자국을 돌아보고 쓰다듬기도 하며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그리워할 것이다. 다시 만나도 우리는 이때와 같을 수 없겠지, 하지만 내게 잊을 수 없는 흔적을 선물해준 사람들은 언제까지고 내게 참 소중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