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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세연 Sep 18. 2020

나는 내 불확실함을 사랑해

당장 다음 달 수입이 0원일지도 모르는 프리랜서 동생의 생각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이렇게 다르다고?
사회가 정해준 길을 착실히 밟아온 6년 차 직장인 언니와 길 너머에는 뭐가 있는지 탐험하는 3년 차 프리랜서 동생의 일과 삶에 대한 교환 일기
* 출간 전 미리 연재


첫 번째 주제 : 불안, 동생 씀


‘휴, 이번 달도 무난히 넘어가겠군’


'휴, 이번 달도 무난히 넘어가겠군.'당장 다음 달 벌이가 아무것도 보장된 게 없어. 항상 조금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달이 시작돼. 이번 3월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때문인지 들어올 법한 강연도, 유튜브 브랜디드 콜라보 도 그 무엇 하나 보장된 게 없어. 어제 다행히 한 가전제품 업체로부터 반가운 협업 제안을 받고 막 한시름 놓은 참이야. 이렇게 나는 당장에 눈 앞의 한 달 벌이를 걱정하면서 불확실한 하루를 살아가는 초보 프리랜서야.


3개월 전 까지만 해도 통장에 찍힌 내역을 보고 ‘오.. 이 정도면 쏠쏠한데?’ 하며 자만심이 꾸물꾸물 올라왔던 적이 있었지. 그때는 무슨 허세인지 친구들 모임에 가면 내가 돈을 조금 더 내고, 친구 생일에 더 힘을 줘 보기도 하고, 쇼핑도 하고 싶을 때 마음껏 했어. 대개 프리랜서에게 돈이 많이 들어오는 대박 달은 그만큼 나의 업무량이 많았다는 의미이니, ‘내가 이만큼 열심히 했는데 이것도 못써!?’라는 보상심리가 따르는 것 같아.


언제 한 번은 드론을 너무 사고 싶은 거야. 저렴하고 초보자가 쓰기 좋은 드론 장비를 찾아보니까 40만 원 정도 하더라. 그런데 돈도 써본 사람이 쓴다고, 나에게 40만 원은 주말 알바를 해서 겨우 번 한 달 월급처럼 크게 느껴졌어. 통 작기로 소문난 나답게 몇 주를 고민하다 확 질러버렸는데, 웬걸. 타이밍 좋게 충청북도 중부권 관광 협의회에서 여행 관련 유튜브 콜라보 문의가 왔어. 그때 회신을 하며 드론이 있어서 멋지게 찍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슬쩍 어필하니 본래 제안 비용에서 100만 원을 올려 준거야. ‘뭐지? 헐. 드론 두 개를 사고도 남을 돈이네’


이때를 계기로, 씀씀이가 조금은 커졌던 것 같아. 사고 싶은 건 사면서 살아도 되겠다! 장비는 미래에 대한 투자구나, 나도 이제 직장인만큼 버는데 쓸 건 시원하게 쓰자!


이러한 행동이 초짜 프리랜서가 저지르기 가장 쉬운 실수라는 것을 깨우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초짜 프리랜서가 저지르기 가장 쉬운 실수라는 것을 깨우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 다행히도 말이야. 대박 달이 있으면 쪽박 달이 있다는 것, 그러니 대박 달에는 허세 부리지 말고 쪽박 달을 대비하여 돈을 비축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당장 저번 달 500만 원을 벌어 엄마를 위한 콘서트 티켓을 1초의 고민 없이 끊다 가도, 이번 달엔 생활비도 촉박해 엄마가 사 오라는 우유 심부름도 괜히 아까워지곤 하거든. 겁나 쿨한 밥 잘 사 주는 멋진 언니가 되었다가도 몇 천 원 하는 넷플릭스 이용료가 아까워 매달 끊을까 고민하는 소인배가 되곤 해.

이런 당장의 생계에 대한 불안이 자주 찾아오기 때문에 항상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다양한 일을 궁리하게 돼. 이 또한 프리랜서의 삶을 유지하는 중요한 방법 같아. 조금 배고프다 싶은 달에는 항상 어떤 새로운 일들을 벌여볼까 고민을 시작하지. ‘영상 편집 과외를 열어볼까? 유튜브 스터디를 진행해볼까? 에어비앤비를 해볼까? 글을 써볼까?’ 등등..

 

프리랜서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것은, ‘앞으로의 불안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어요’ 하고 약속하는 것과 같아.


프리랜서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것은, ‘앞으로의 불안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어요’ 하고 약속하는 것과 같아. 때때로 불안하지만 이 생활이, 이 직업이 내게 가장 잘 맞는 편안함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나는 3년 후, 5년 후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보다 나에게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함이 더 좋은 사람이거든.


새로운 일을 벌이기 좋아하고 정체되어 있는 느낌을 가장 싫어하는 나에게 어쩌면 이런 적절한 ‘불안’은 성가시지만 내가 평생 함께해야 할 친구인 것 같아. 언니는 수입이 불안할 리는 없을 테니 삶이 조금 더 평온할까? 언니에게는 어떤 불안이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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