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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세연 Oct 03. 2020

이렇게 소소하게 행복하면서 내 인생은 끝인 걸까?

취업했다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야, 직장인 언니의 생각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이렇게 다르다고?
사회가 정해준 길을 착실히 밟아온 6년 차 직장인 언니와 길 너머에는 뭐가 있는지 탐험하는 3년 차 프리랜서 동생의 일과 삶에 대한 교환 일기
* 출간 전 미리 연재


첫 번째 주제 : 불안-2, 언니 씀


생각해보면 불안은 늘 내가 이뤄낸 성과의 원동력이었어


생각해보면 불안은 늘 내가 이뤄낸 성과의 원동력이었어. 고등학교 때는 남들만큼 대학에 못 갈까 봐 불안했고, 대학교 시절에는 취업을 못할 까 봐 불안했어. 때로 그 불안의 강도는 정말 강렬해서, 취업 준비 시절에는 5킬로가 빠지고, 면접 전 날에는 물 말고는 입에 댈 수도 없을 정도로 나를 힘들게 했지. 그때 내 불안의 근원은 바로 ‘남들의 눈’이었던 것 같아. ‘남들만큼 아니, 남들보다 잘 해내야 한다.’라고 생각했고, 그러지 못할 때에는 남과 내 모습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했어.


그때 가장 무서웠던 건 ‘아, 내가 이번에 성적이 안 좋으면, 대학을 못 가면, 취업을 못하면 남들이 뭐라고 할까’ 였어. 아마 이게 ‘장녀 콤플렉스’ 같은 걸까.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는 딱히 내게 부담을 주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강한 자존심과 승부욕으로 나는 항상 나를 셀프로 감시해왔던 거야.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건 생각해보면 나밖에 없는데 좀 예쁜 눈으로 바라 봐줄 걸, 그때 나는 도끼눈을 뜨고 나를 감시하기만 했어.


 난 내 인생을 레벨업이 필요한 게임처럼 보고 차근차근
다음 레벨을 깨 부실 생각만 하고 있었어


취업 후, 이제 사회가 내준 ‘대입, 학점, 취업 등’의 숙제들을 얼추 마쳤고, 스스로를 경제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위치도 되었으니 불안함이 없어졌나, 싶었는데 웬걸, 불안은 끝나지 않더라. 나는 내 인생을 종일 ‘남들의 눈’(사회 통념 상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는 데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거야. ‘이제 다음엔 뭘 해야 하지? 다음 단계는 뭐야? 승진? 결혼?’ 아무도 그러라고 한 사람이 없었는데, 난 내 인생을 레벨업이 필요한 게임처럼 보고 차근차근 다음 레벨을 깨 부실 생각만 하고 있었어. 취업을 마친 나이는 고작 23살이었고, 아직 찬란한 내 20대는 7년이나 남았는데 그다음에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회사 생활은 정말로 힘들지 않았는데 다음 단계가 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게 참 힘들었어. 그게 바로 직장 들어간 후 겪는 오춘기였나 봐.


그래서 여러 가지 것들을 해보았지. 요리도 해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운동도 해보면서 내 인생을 채워주는 작지만 풍요로운 것들을 찾아다녀 보았어. 거기서 얻는 반짝이는 기쁨들도 물론 있었지만 여전히 뭔가 중요한 게 빠져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어. 문득문득 내 마음속에 이런 질문이 고개를 들었지 ‘이게 전부인가? 이렇게 소소하게 행복하며 내 인생은 끝인가?’ 문장이 좀 극단적인 것 같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했던 건 맞아. 소소하게 행복한 건 아름다운 일이지만, 뭔가 나는 내 인생에서 더 바라는 게 있었던 것 같았거든.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때 세화 널 보며 방향을 차츰차츰 찾았던 것 같아. 내가 찾고 있었던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어. 남들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이 아니라. 세화는 될 성 부른 떡잎답게, ‘남들이(정확히 말하면 꼰대 DNA를 갖춘 아빠와 언니의)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을 무시하는 특기를 가졌었지. 그걸 보며 나는 차츰 깨달았던 것 같아. 진짜 멋진 건 남의 시선을 누구보다 잘 맞추어 하나뿐인 내 인생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기준을 갖고 남들의 시선이 주는 눈치를 무시하는 사람이더라. 바로 네 얘기야.


널 보며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봤지. 난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두려워하는 불안’ 때문에 안정적인 직장, 평화로운 일상을 얻었지만 더 중요한 걸 무시하고 있었나 봐. 이렇게 남들 눈으로 살다가는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찾아온 걸 보면. 그 불안 이 찾아온 후부터 남들이 멋지다고 하는 거 말고, 내 눈에 멋져 보이는 걸 찾기 시작했어. 그렇게 하다 보니까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도 조금씩 알게 되더라.


나는 내 마음을 똑 빼닮은 글을 읽을 때 짜릿하고,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상상해 보게 하는 개성 넘치는 가게에 가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 부동산 투자로 10억을 번 사람이나 사다리의 꼭대기에서 많은 부하를 거느린 사람보다, 자기 냄새가 나는 소담한 동네 카페의 사장님이 더 멋져 보여. 내가 좋아하는 마카롱 가게 면 더할 나위 없겠다. 아 물론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야. ‘돈만’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직장 오춘기를 겪으며 깨달은 거야.


 언제나 그랬듯 불안은 여전히 내 성취의 원동력이라 앞으로도 쭉 곁에 있을 거야


돈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게 훨씬 중요해. 그걸 깨달으면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 쓰는 나’를 볼 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는 상관없이 행복해. 누군가는 읽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쓸데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말 이 행동이 시간낭비일지언정 뭐 어때? 내 시간 내가 좀 낭비한다는데. 그리고 그 시간은 내가 멋져하는 나의 모습을 닮아가기 위한 한 발짝이니까 결코 흥청망청 낭비하는 시간만은 아닐 거야.


언제나 그랬듯 불안은 여전히 내 성취의 원동력이라 앞으로도 쭉 곁에 있을 거야. 그렇지만 더 이상 그 불안이 ‘남과의 비교’에서 탄생하는 건 싫어. 오춘기를 겪어낸 나는 그 눈치 보기 식 불안을 정중히 거절하겠어. 대신 남을 챙기느라 내 삶을 내팽개치고 있는 건 아닌가? 내 삶을 내가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나? 에서 태어난 ‘내가 기준점인 불안’을 삶의 동반자로 삼겠어. 이왕 평생 함께할 감정이라면 올바르게 정돈하고 가는 게 필요한 시점이야. 내가 혹시 또 남의 시선만 신경 쓰는 불량 불안 때문에 네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가차 없이 충고해줘. ‘언니! 그건 불량 불안이야. 진정한 불안은 남의 눈에서 탄생하는 게 아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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