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하루에 세 번 자신을 돌아본다(吾日三省吾身)"고 했다.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함에 정성을 다하였는지, 벗과 사귐에 신의를 지켰는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제대로 익혔는지를 매일 스스로에게 물었다 한다. 자기성찰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말과 행동의 일치에서 비롯된다.
조선 중종 때의 일이다. 한 젊은 선비가 당시 이름난 학자 정황(丁潢)을 찾아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인품을 갖출 수 있습니까?" 정황은 붓을 들어 종이에 '구중심자득중음(口重心者得重音)'이라 썼다. '입을 무겁게 하는 사람은 무게 있는 말을 얻는다'는 뜻이다. 젊은 선비가 의아해하자 정황은 덧붙였다. "말은 인격의 그림자요, 인품의 거울이니라. 경솔한 말을 삼가고 언행일치를 이룬다면, 자연히 사람의 덕이 쌓이는 법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말과 행동이 신중하면 과오가 적다(言寡尤 行寡悔)"고 했다. 말을 가려 하면 후회할 일이 적고, 행동을 신중히 하면 실수가 적다는 뜻이다. 동양 철학의 근본은 항상 자신을 닦는 '수신(修身)'에서 시작한다. 수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언행일치(言行一致)'다. 말과 행동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비로소 인격이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진정한 인품은 거창한 언변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드러난다. 명나라 학자 왕수인(王守仁)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했다. 앎과 실천은 하나라는 뜻이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될 때 비로소 진정한 앎이 된다는 것이다. 말과 행동의 간극이 클수록 그 사람의 인격에 금이 가기 마련이다.
1593년 임진왜란 중, 조선의 명장 권율(權慄)은 행주산성에서 승리한 후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전장에서 장수의 말 한마디는 화살보다 날카롭고, 행동 하나는 성벽보다 견고하다." 그는 평소 군사들에게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켰고, 한 번 내린 명령은 번복하지 않았다. 권율의 언행일치는 결국 3,000여 명의 군사로 3만여 명의 왜군을 물리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말이 사람을 담아내고, 사람이 말을 담아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맹자는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니라(言者心聲也, 行者心迹也)"라고 했다. 우리가 내뱉는 말은 단순한 소리의 파동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이다.
입으로는 고상한 이상을 말하면서 행동은 그와 정반대인 사람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결국 신뢰를 잃고 만다. 반면, 평소 말을 아끼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사람은 어떤가? 그 무게감과 신뢰는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언행일치'의 힘이다.
동양 철학의 근간인 『대학(大學)』에서는 '성의정심(誠意正心)'을 강조한다.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시작은 '말을 삼가는 것'에서 비롯된다.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고, 한 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태도야말로 인격을 완성하는 지름길이다.
인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의 작은 언행이 모여 한 사람의 인품을 완성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구이불발(口而不發)'이라 했다. 입에 담아도 쉽게 발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입과 마음 사이에 다리를 하나 더 놓아 신중함을 더하라는 가르침이다.
말은 사람의 그림자와 같다. 그림자가 그 사람의 형상을 그대로 비추듯,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우리가 흔히 '그 사람답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결국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관되어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될 때 나오는 평가다.
말이 품은 사람, 사람이 품은 말. 결국 둘은 하나다. 인격이 바로 서야 말에 품격이 생기고, 말에 품격이 생겨야 인품이 완성된다. 『중용(中庸)』에서 말한 '수기안인(修己安人)', 자신을 닦아 타인을 편안하게 한다는 가르침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말과 행동의 일치,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추구해야 할 인격의 완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