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지 말걸 그랬어

by 바나나 슈즈


칫솔을 바꾸려고 하다가, 화장실 선반 위의 바디로션을 발견했다. 언젠가 꼭 써야지, 특별한 날을 위해 남겨둬야지, 하고 아껴뒀던 그 물건.


그 향기를 처음 맡았던 건 수영장이었다.


샤워실에서 나오는데 누군가의 피부에서 은은한 향이 흘러왔다. 익숙하지만 낯선, 차분하면서도 뇌리에 오래 남는 냄새였다. 한동안 머뭇거리다 비슷한 향을 찾아냈고, 생일을 핑계로 나 자신에게 선물했다.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면 손끝에 조금 덜어 목덜미에 발랐다. 그러면 그 순간만큼은 신혼여행에서 들렀던 동남아의 작은 스파에 와 있는 듯했다. 창 너머로 들려오던 바람 소리와 느슨한 평온함마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벌써 2년이 지났다.



나는 언제나 좋은 것을 아껴 쓴다. 아니, 아껴 둔다. 좋아하는 물건일수록 쉽게 쓰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어머니는 "좋은 건 아껴 둬야 한다"고 말하셨고, 할머니는 값비싼 비단옷을 장롱 깊숙이 넣어 두셨다. 그 깊이가 너무도 깊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장롱을 열었을 때 우리는 그것들을 발견했다. 몇십 년을 기다렸던 고운 옷들은 그제야 빛을 보았지만, 이미 바래고 낡아버렸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꺼낸 옷을 햇빛 아래 펼쳐 보이던 순간의 표정을. 그것은 후회와 아쉬움이 뒤섞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나는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어야 했다. 너무 아끼면, 결국 아무도 쓰지 못한다는 진실을. 시간이라는 도둑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잃어버리는 것을 얻는 것보다 더 강렬하게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얻지 못한 이득보다 잃어버린 손실에 약 두 배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것을 '손실 회피'라 부른다. 그러나 이런 학문적 개념이 아니어도 우리는 안다. 쉽게 쓰지 못하는 그 마음의 실체를. 물건을 아끼는 행위는 절약이 아니라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이걸 지금 써버리면, 다 써버리면, 그 순간이 사라져 버릴까 두려워서. 쾌락의 소멸을 미리 애도하는 슬픔으로.


그래서 우리는 '특별한 날'을 기다린다. 더 좋은 순간이 올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더 좋은 순간은 오지 않는다. 오지 않은 채로, 우리를 비웃듯 지나가버린다. 마치 사막에서 신기루처럼, 가까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지평선처럼 우리를 조롱한다.


나는 저 바디로션을 매일 쓸 수도 있었다. 그것이 주는 작은 기쁨을 일상에 녹여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가끔 뚜껑을 열어 향기만 음미했는데 이제는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 나는 무언가를 지킨다고 믿었으나, 사실은 잃어버리고 있었다. 아껴두는 습관은 결국 '지금 여기'의 행복을 유보하는 짐짓 현명한 척하는 어리석음이었다.



문득 대학 시절 한 철학 수업이 떠올랐다. 교수님은 '카르페 디엠(Carpe Diem)'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을 살라는 의미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쾌락주의의 표상이 아니라, 시간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인 듯하다. 그 말을 상기시키며 '나중'을 위해 아껴둔 것들이 떠올랐다. 힘들게 구한 스타벅스 다이어리, 비싼 양주, 마음속에만 남겨둔 고백들. 그리고 내가 쓰지 못한 시간들. 시간이라는 것은 저장했다가 나중에 꺼내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사용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진다.


그때 나는 그 수업을 듣고도, 여전히 미래의 나를 믿었다. 언젠가는 써야지. 언젠가는 마셔야지. 언젠가는 말해야지. 하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언젠가'는 쉽게 오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지평선 너머에 존재하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시간의 좌표점이다.


융은 인간의 내면에는 우리가 인정하기 꺼리는 '그림자(Shadow)'가 존재한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기 두려워한다. 아마 나의 '아낌'도 그런 그림자의 한 모습일 것이다.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 사라져 버릴 것에 대한 불안.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이 충분하지 않다는, 스스로에게 최상의 것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은밀한 믿음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를 '지연된 만족'의 병리적 형태로 규정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시간의 본질과 기억의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바디로션이라는 물질적 대상에 지나간 시간의 기억을 붙잡아두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모자라서 아낀 걸까? 아니면, 스스로 충분하다고 인정하지 못해서였을까? 아껴두는 행위의 이면에는 '나는 지금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무의식적 메시지가 숨어있다.




이제는 바꿔야겠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법을 배워야겠다. 소유하는 것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저장하는 것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삶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시간이라는 강물은 한 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그 강물에 몸을 맡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니 내일 아침, 양치를 마친 뒤 선반 위의 바디로션을 집어 들 것이다. 유통기한이 지났든 말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사용하고 빈 용기는 과감히 버릴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사러 갈 것이다. 그것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그리고 그것을 아낌없이 사용할 것이다. 마치 오늘이 특별한 날인 것처럼. 실제로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아끼면 똥 된다.


이건 쉽게 말하는 속설이 아니다. 우리가 삶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은유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붙잡으려 할수록 빠져나가는 행복의 본질에 관한 통찰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온전히 누리라는 속삭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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