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타인의 불행에 은밀한 즐거움을 느끼는 그 짧은 찰나. 독일어로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 불리는 이 감정은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어두운 그림자다.
회사에서 사사건건 나를 꼽주던 동료가 상사에게 호되게 질책받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묘한 쾌감. 항상 부내나고 완벽해 보이던 이웃이 실은 심각한 이혼 위기라는 소식에 안도하는 마음. 친구의 실패한 연애담을 들으며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 우리는 이런 순간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나'라는 존재의 일부다.
내가 처음 이 감정의 정체를 인식한 것은 대학 시절,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자격증 시험에서 탈락했을 때였다. 겉으로는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속으로는 기묘한 우월감이 피어올랐다. 그 순간 나는 내 안의 이중성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왜 타인의 실패에서 희열을 느끼는가?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감정일까?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자존감의 방어기제라고 설명한다. 나는 그것을 알고서야, 내 기묘한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의 실패는 상대적으로 나의 가치를 높여주는 착시를 일으킨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는 이러한 감정이 더욱 증폭된다. 누군가의 추락은 내가 올라설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하지만 이런 감정의 덫에 빠지면, 우리는 점점 더 고립된다.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마음은 결국 자신의 불안과 열등감의 반영이다. 내가 충분히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기에, 다른 이의 불행이 위안이 되는 것이다.
한때 나는 SNS에서 유명인의 실수나 추문을 볼 때마다 은근히 즐거워했다. 그들의 화려한 삶에 금이 가는 모습이 왠지 공정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타인의 불행을 소비하는 시간만큼, 나 자신의 행복을 구축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타인의 불행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마치 남의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훔쳐 마시는 것과 같다. 일시적인 갈증은 해소될지 모르나, 그것은 결코 나의 냉장고를 채우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진정한 행복은 나 자신의 성장과 충만함에서 비롯된다.
우리 모두는 타인과 비교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비교의 목적이 자기 위안이나 우월감이 아닌, 건강한 자극과 배움이 될 때 우리는 함께 성장할 수 있다. 타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을 때, 역설적으로 우리의 마음은 더 풍요로워진다.
나는 이제 내 안의 '샤덴프로이데'를 마주할 때마다 그것을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려 한다. 그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어떤 불안과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성찰한다. 때로는 그저 인간적인 나약함을 인정하고, 더 넓은 마음으로 나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려 노력한다.
행복이라는 케이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누군가의 행복이 내 몫을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나눌수록 더 커진다. 타인의 불행이 아닌, 모두의 행복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