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잘 지내냐?
나는 오는 전화만 받는 타입이라 엄마가 하는 전화만 받을 뿐 안부는 잘 전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엄마가 밥솥을 50만 원짜리로 바꿨다고 했다. 바꾸고 나니 밥이 얼마나 좋은지 설명하는 엄마. 필요 이상으로 말이 많았다.
"엄마. 밥솥이 50만 원이니까 당연히 좋겠지. 밥솥을 왜 그렇게 비싼 걸 사."
-"아니야, 싼 건 밥이 잘 안 되고 바닥이 눌고 김이 새고 안 좋더라."
"엄마. 내가 어릴 때는 몰랐는데, 왜 집에 돈이 안 모였는지 이제 알 것 같아. 좀 눌면 어때서. 그냥 어지간한 밥솥 사지 낭비야."
엄마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엄마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 밥 맛있게 해서 먹으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사람들은 종종 나이 들수록 미래보다 현재에 투자한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시간의 유한함을 더 분명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눌은밥 싫다는데 밥도 맘대로 못 해 먹게 하고. 밥솥에 소소한 사치도 못 부리게 하고. 엄마 살림 걱정하거나 사주지도 않으면서 잔소리만 하는 딸이 야속할 법도 한데, 엄마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기억했다.
아빠는 출근한다고 백화점 옷 사 입고 모든 아빠 옷은 세탁소로 갔지. 엄마는 꽃무늬 화려한 만원 원피스로 한 계절을 지냈다. 그 원피스는 두 계절이었나? 아니, 세 계절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왜 밥솥에 그렇게 집착했을까. 어쩌면 나는 엄마가 아끼고 절약하는 사람이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라, 엄마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사람. 변하지 않는 삶.
밥솥은 그저 밥솥일 뿐인데, 내게는 불현듯 세상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처럼 다가왔다. 젊은 시절 나는 부모님이 항상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50만 원짜리 밥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일깨웠다.
전화를 끊고 나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1년에 한두 번 짧게 집에 다녀가는 나는 엄마가 그 밥솥으로 지은 밥을 한 번도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전까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직접 사준 물건도 아니면서, 왜 그 밥솥이 그렇게 신경 쓰였을까.
다음에 집에 가면 엄마에게 그 밥솥으로 지은 밥을 먹어보자고 해야겠다. 그 밥이 정말 50만 원의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밥을 먹는 시간은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말하고 후회할 말이 왜 필터 없이 나올까. 그 순간에는 옳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시간이 지나면 잔인하게 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진실을 말한다는 명목 하에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50만 원짜리 밥솥은 나에게 그런 깨달음을 주었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거두어들일 수 없다. 그래서 때로는 침묵이 더 지혜로울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