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햇살이 그렇게 차이를 만들기 시작한 게.
아파트 단지 뒤편, 하천 인근의 산책로를 지날 때였다. 비슷한 크기의 두 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다. 같은 흙을 밟고 같은 하늘을 향해 서 있는데, 이상하게도 한쪽 나무가 먼저 연둣빛 싹을 틔우고 있었다. 조금 더 들여다보니, 그 나무 쪽으로 햇살이 더 오래 머물고 있었다. 겨울의 잔해가 아직 남아 있는 이른 봄, 단 몇 시간의 햇볕 차이가 생명의 속도를 가른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햇볕이 오래 닿는 아이
어릴 적, 나는 한 친구를 부러워했다. 그는 언제나 당당했고,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 줄 알았으며, 실패를 해도 금방 털고 일어났다. 나는 늘 조심스러웠고, 실수라도 하면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곤 했다. 왜 나는 저렇게 태어나지 못했을까, 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했다. 똑같아지고 싶어서 그 아이의 모든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것은 타고난 기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늘 애정을 아끼지 않는 부모가 있었다. 별것 아닌 일에도 “잘했어”라고 말해 주었고, 때때로 실수를 해도 “괜찮아”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실수해도 괜찮다는 확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나도 부모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애정 표현은 조심스럽고, 때로는 생략되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확신이 아니라 추측이 되는 순간, 아이는 조심스러워진다. 그것은 햇살이 부족한 나무와 같았다. 뿌리는 같고, 흙도 같지만, 빛이 오래 닿은 나무가 먼저 잎을 틔우는 것처럼.
애정은 속도를 만든다
심리학자들은 애착 형성이 아이의 성격과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다. 안정 애착을 경험한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서도 비교적 자신감 있게 탐색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건강한 기대를 갖는다. 반면 불안정 애착을 경험한 아이들은 관계에서 쉽게 위축되고, 자신이 받아도 될 사랑을 의심하곤 한다.
이런 연구들을 접할 때마다, 나는 나란히 서 있던 두 나무를 떠올린다. 어떤 나무는 충분한 햇볕을 받으며 당당히 잎을 펼치고, 어떤 나무는 아직 겨울의 끝자락에서 머뭇거린다. 같은 자리에서 시작했지만, 작은 차이가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 낸다.
결국, 애정은 속도를 만든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두려움 없이 나아간다.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 차이는 애초에 크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은 확연한 간격이 되어 버린다.
나무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
어느 날, 그 공원의 나무를 다시 보았다. 여전히 한쪽 나무가 더 무성했지만, 두 나무 사이에는 가지가 섞이는 지점이 있었다. 덜 자란 나무의 가지가 더 자란 나무의 가지와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빛이 반사되어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부족했던 사람도, 누군가의 빛이 되어 줄 수 있기를.
햇살이 부족한 나무가, 다른 나무의 가지를 타고 조금이라도 더 멀리 뻗어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때로는, 스스로 빛을 구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빛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할 수도 있다.
봄이 오고 있다.
햇살은 언제나 모든 곳에 완벽하게 닿지는 않지만, 우리는 서로의 가지를 타고 조금씩 빛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