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3월이다.
한 해의 시작이라며 새 다이어리를 펼치고, 올해는 정말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이다. 거리는 아직 겨울과 봄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고, 아침저녁으로는 코트를 걸치지만, 낮에는 볕이 따스하다. 이렇게 계절이 머뭇거리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때쯤이면, 또 이런 말을 하게 되겠지.
"시간 정말 빠르다."
작년 이맘때를 떠올려본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어떤 고민을 했고, 무엇을 원했으며, 어떤 기분으로 3월을 맞았을까?
그런데 이상하다. 몇 가지 흐릿한 장면은 떠오르지만, 선명하지가 않다. 오히려 작년 봄의 기억보다 몇 년 전 여행에서의 하루가 더 생생하다. 낯선 도시에서 헤맸던 거리, 예상치 못했던 소나기, 골목 어귀에서 마셨던 커피. 그 하루는 또렷하게 남아 있는데, 정작 작년 3월은 흐릿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일 비슷한 하루를 살아간다. 출근하고, 일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먹고, 유튜브를 보다가 잠이 든다. 하루하루는 충분히 길게 느껴지지만, 막상 몇 달이 지나고 나면 남는 기억이 많지 않다.
그러니까,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을 충분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릴 땐 방학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여름이든 겨울이든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린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뇌는 익숙한 것들을 굳이 저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때는 공항에서부터 모든 게 새롭다. 표지판 하나하나가 낯설고,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같은 도시를 두세 번 방문하면? 이제는 그냥 익숙한 곳이 된다. 머릿속에서 ‘처음’이라는 신호가 사라지면, 뇌는 그 경험을 특별하게 저장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하고, 같은 카페에서 같은 음료를 마시고, 같은 일을 반복하면, 결국 한 해가 지나고도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게 된다.
"올해도 그냥 휙 지나갔어."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느낌을 줄일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비싼 여행을 갈 필요도, 거창한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다.
매일 같은 길로 출근했다면, 오늘은 일부러 다른 골목으로 돌아가 보기.
카페에서 무심코 늘 마시는 커피 대신,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메뉴를 시켜 보기.
읽던 장르의 책이 아니라, 전혀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골라 보기.
퇴근 후 무의식적으로 틀던 유튜브 대신, 가본 적 없는 동네를 산책해 보기.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쌓이면, 뇌는 ‘새로운 경험’이라고 인식하고, 그 시간들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결국 시간이 더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년 3월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 올해의 3월도 비슷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변화가 없다면, 시간은 또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3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지금까지와 같은 하루를 반복할 수도 있고, 아주 작은 변화 하나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사소한 선택이지만, 그것이 쌓이면 우리는 연말이 되었을 때 조금은 덜 허무한 마음으로 한 해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꽤 길었다."
당신의 3월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