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온 남편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
"강아한테 가야지~~~"
바로 아이 방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겁게 잘 보내고 있는 아이의 방문을 벌컥 열 때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냥 좀 두지. 이제는 거리 두기를 해야 할 때라고!
"강아, 밥은 먹었어? 숙제는? 지금 하는 게임은 뭐야~ 오늘은 뭐 했어?"
아이는 이미 게임 속 세상에 빠져있다. 중학교 3학년, 이제는 아빠의 관심이 더 귀찮은 나이가 됐다. 그렇지만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 아빠 나가!"
짜증 섞인 아이의 반응에도 남편은 즐거워하며 웃는다. 나는 아이와 충분히 교감을 나누는 아빠다, 그럼~ 난 친구 같은 아빠지, 만족스럽다는 그 웃음. 나는 그 웃음이 불편하다. '이제 와서?'
남편이 아이에게 살갑게 다가갈 때마다 열다섯 해 전으로 기억이 돌아간다.
입이 짧은 아이, 온갖 쇼를 해가며 밥 먹이느라 진이 다 빠질 때면, 남편은 자기 밥만 챙겨 먹고 일어섰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고 나서 방문을 닫고 들어가 눕는다. 나는 덜 먹은 저녁을 치우고 그릇을 정리하고 아이를 씻긴 후 잠자리에 들었다. 두 시간 만에 깨게 되겠지만.
그런 남편은 밤에는 아이가 울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고, 주말이면 늘 늦잠을 잤다.
어느 날 아이가 창밖을 구경하느라 방충망에 얼굴을 비벼 코와 입 주변이 어른 수염 깎은 모양처럼 까매진 것을 보고, 나는 한여름 39도 폭염 속에서도 아이를 데리고 굳이 버스를 타고 인근의 물이 흐르는 수변공원에 갔다('남편, 네가 자고 있으니 우리가 이 고생을 했다'고 나중에 말해주고 싶었나 보다). 개미 한 마리 없던 아스팔트 위 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택시 탈걸 잠시 후회했지만 한여름 나들이를 강행했다. 결국 공원에 가기도 전에 땀으로 옷이 흠뻑 젖었고, 아이도 지쳐 울었다.
남편에게는 일부러 전화도, 문자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오히려 늘어지게 푹 잔 남편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전화를 걸어왔다. '흥! 우리가 갑자기 없어졌으니 걱정하면서 마음이 애가타겠지...' 했던 내 계획이 실패.
"이제 일어났네. 어디 갔어? 거기 어디야? 미안해, 데리러 갈게."
그때의 남편은 지금보다 15살이나 젊었으나 의지는 젊지 않았다.
그랬던 남편이, 아이의 사춘기가 한풀 꺾이자 돌연 변했다. 주말이면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안달이다.
"밥 먹으러 나가자, 마트 가자, 공연 보러 가자, 아니면 산에라도 가자!"
하지만 이제 아이에게 마트는 신기한 곳이 아니고, 더 이상 가지고 싶은 장난감도 없다. 공연보다 유튜브가 재미있고, 공기 좋은 산보다는 답답한(내 눈에는) 지하 PC방이 좋은 나이다.
남편의 뒤늦은 애정이 고맙지만은 않다. 아이가 안아달라고 할 때, 놀다달라고 할 때, 업어달라고 할 때, 그때 필요했던 게 지금의 이 관심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게 이토록 야속할 줄이야. 과거를 소환하며 온갖 핀잔을 주는 내 잔소리에도 굴하지 않는 저 의지.
문득 나의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따뜻한 사랑을 많이 주지 않으셨다. 아들을 꼭 낳아야 된다고, 드디어 태어난 막내 남동생에게만 유독 애정을 쏟으셨고, 맏이였던 나는 늘 혼나기만 했다.(막내와 나의 나이 차는 3살이고, 막내는 서른이 넘어서까지도 집에서 애기라고 불렸다.)
"왜 이렇게 어질러! 말 좀 들어!"
나를 보는 엄마 손에는 마당 쓰는 나무 손잡이 빗자루가 들려있었는데, 종종 매로 변신했다. 그러나 어린 나는 혼이 나건 어쩌건, 눈물 한 바가지 쏙 빠지고 원망이 풀리면 금새 다정한 엄마가 그리워졌다.(지금도 다정한 친구네 엄마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부럽다.)
엄마 품이 그리웠던 나는 궁여지책을 찾았는데. 잠시나마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 착각이라도 할 수 있는)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귀지가 있건 없건)
"엄마, 귀 좀 파줘"
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엄마 무릎에 누울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나는 습관처럼 귀를 후빈다. 피가 날 때도 있다. 그때 채우지 못한 결핍이 아직도 남아있었구나, 지금 깨닫는다.
몇 년 전, 팔을 다친 엄마한테 가보지 못해서 병원비를 보내드렸더니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많이 사랑해, 고마워."
갑작스러운 고백에 나도 모르게
"응"
이라고 답했다. 어릴 때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인데,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인데, 왜 그렇게 허무한 대답이 나왔을까.
영화 <인턴>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입장이 바뀌긴 했는데, 앤 해서웨이가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사랑해"라고 하면 엄마는 "땡큐" 혹은 "알고 있어(I know that.)"라고만 한다. 저간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렇게 쿨하지 못하다. 뒤늦은 사랑의 말에도 고팠던 마음이 따뜻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중년의 시기를 '생산성 대 침체의 단계'라고 했다. 이 시기에는 다음 세대를 돌보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고. 남편도 이제야 깨달은 걸까. 자기 삶에 치여 놓쳤던 시간들을, 아이와의 관계를, 아빠라는 이름의 무게를.
어제도 남편은 아이 방 앞을 서성였다. '강아 어렸을 때나 잘하지' 하면서 뒤통수에 대고 소리 지르는 나 때문에
"에휴, 내가 죄인이다."
그는 문고리만 만지작거리다 조용히 돌아섰다.
아이에게 거절당하는 지금, 남편은 예전에 자신이 거절했던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까.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비록 때늦은 사랑일지라도, 그 진심이 아이의 마음에 닿기를.
어쩌면 사랑은 타이밍이 아니라,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가에 달린 것일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늦게 배우는 자들의 교훈'에서 "늦게 깨닫는 자도 결국 진리에 다다른다."라고 했다. 남편의 뒤늦은 애정과 엄마의 고백은, 어쩌면 그들이 이제야 사랑의 본질을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려나. 중요한 것은 그 시기가 아니라, 그 마음의 진실함이니까.
사랑은 때로 늦게 피어난다. 망설이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놓쳐버린 순간들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