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의 계급론

우리가 맡을 수 없는 자신의 향기

by 바나나 슈즈
냄새는 강력한 마법사다.
그것은 당신을 수천 마일 너머, 당신이 살아온 모든 시간 속으로 데려간다.
Smell is a potent wizard that transports you across thousands of miles and all the years you have lived.

– 헬렌 켈러 (Helen Keller)


낯선 이의 체취


내 옆에서 열심히 걷고 있는 온몸이 땀에 젖은 한 사람.

처음엔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사실 의식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람을 피해 한 칸 너머 러닝머신에 올라섰다). 운동하는 사람이 땀을 흘리는 건 당연한 일이고, 나도 곧 땀을 흘릴 테니까.


하지만 몇 분이 지나자,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낯선 공기가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역한.


비릿했다.


마치 오래된 축축한 담요를 덮어둔 듯한, 습기 먹은 마당 한편의 개집에서 나는 것 같은 눅진한 냄새.

러닝 머신을 달려 그 사람과 나의 숨이 차오를수록 공기 속에 더 깊이 섞인 그 사람의 체취가 내 몸속에 들어온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나는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숨을 쉬는 한 그것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러닝머신을 멈추고 체육관을 나왔다.


차가운 공기 속으로 나서며 헬스장 문을 열자, 한순간 차가운 공기가 폐를 채웠다.

아, 겨울 냄새.


공기에도 온도가 있다.

겨울의 공기는 금속처럼 서늘하고, 차가울수록 향이 날카롭다. 반면 여름의 공기는 눅진한 풀 냄새와 습기를 머금고 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냄새에 너무 예민한 사람이 되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


그러나 나는 원래부터 냄새를 가려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어른이 된 뒤로도 우리 집은 푸세식 화장실이었는데. 휴대폰이 보급되고 PC방이 늘어나던 시절, 다른 친구들은 아파트에 살 때 우리는 낡은 한옥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을 제외한 내가 아는 모든 장소의 화장실은 수세식이었다.


집 마당 끝,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문 바로 옆. 고무신 모양의 변기 틀이 놓인 깊이 2~3m의 재래식 화장실.


큰일이라도 볼라치면 조심해야 했다.

쭈그린 다리를 한쪽씩 펴 가며 앉았고, 여름이면 모기에 엉덩이를 내어주고, 겨울이면 뺨을 스치는 냉기에 온몸을 웅크렸다.


특히 가랑이 사이로 올라오는 분변 냄새는 참을 수가 없어서, 침을 삼키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변기 앞에 침을 한 바가지 뱉었다.


하지만 더럽게 쓴다며 주인 할머니는 늘 나를 혼냈고, 우리 어머니는 사죄하듯 고무장갑을 끼고 변 구멍 사이에 얼굴을 맞대고 엎드려 화장실을 닦으셨다. 내가 맡지 않기 위해 버텨낸 분변 냄새가 우리 어머니께 전가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코가 거부했던 그 냄새는 내 옷에도, 내 머리카락에 배어 있었겠지.


변이 엉덩이에 튈 정도로 차오르면 '똥차'가 와서 그것을 퍼냈다. 그날이면 우리는 숨도 안 쉬고 뛰어서 그곳을 지나갔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내 몸에서도 그 냄새가 났다는 걸.

어쩌면 그때부터였을까. 냄새가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닫기 시작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경계


냄새는 단순한 후각적 경험이 아니다.

냄새는 우리를 드러내는 흔적이다.


지하철에 앉아 있으면, 사람마다 냄새가 다르다.


누군가는 향수를 진하게 뿌리고, 누군가는 오래된 옷에 밴 쿰쿰한 냄새를 풍긴다. 어떤 이는 밤새 마신 술 냄새를 남기고, 누군가는 입을 열 때마다 구취가 퍼진다.


사람은 자신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영화 기생충 속 한 장면.

기택의 아들이 조용히 말했다.
"아빠, 우리한테 다 똑같은 냄새가 나는 거 알아?"
"무슨 소리야?"
"지하철 타는 사람 냄새."


기택의 가족은 몰랐던 그것. 박사장은 그것을 알아차렸다.

"같은 냄새가 나."


어떤 냄새는, 단순한 체취가 아니다.

우리가 어디서 살고, 무엇을 먹고,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를 은연중에 남기는 흔적이다.


냄새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계급의 경계선이 된다. 하지만 더 아이러니한 것은, 자신의 냄새만큼은 맡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마치 우리가 자신의 계급적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가난한 사람의 냄새는 그들만 모르고, 부자는 그 차이를 가장 먼저 알아챈다.




시간을 담은 향기


냄새는 기억을 남긴다.


소설 『향수』에서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말했다.

"냄새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루누이는 세상 모든 향을 기억하고, 심지어 사람을 향기로 기억하려 했다.


냄새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을 각인시킨다. 냄새는 단순한 후각적 경험을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이자 역사다.


소설 『향수』의 그루누이처럼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고유한 향을 지니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마치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우연히 마주친 마들렌의 향기에서 과거를 발견했듯, 우리의 삶도 냄새라는 보이지 않는 실로 엮여있다.


나는 오늘도 지하철에서 스치는 향을 맡는다.

누군가는 오래된 원룸의 냄새를 풍기고, 누군가는 값비싼 향수를 뿌려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나는 어떤 냄새로 기억될까?





우리는 모두 냄새를 가진 존재 ㆍㆍㆍ


어릴 적 푸세식 화장실의 냄새를 피하려 했던 내가, 이제는 헬스장에서, 또 지하철에서 타인의 냄새를 피한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은 냄새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냄새는 우리가 숨기고 싶은 진실을 드러내는 가장 정직한 증거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냄새는 우리 모두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가장 원초적인 표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냄새를 가진 존재다. 그리고 그 냄새는, 우리가 어디서 왔든 어디로 가든,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가장 솔직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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