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시간은 모든 것을 치유하지 않지만, 그것과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쳐준다.
Time doesn’t heal everything, but it teaches us how to live with the pain. – Unknown
최근 감기를 앓고 난 뒤로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밤마다 목이 간질거려 기침을 해대다 겨우 잠드는 날이 이어졌다. 새벽녘, 터져 나온 기침 소리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기침마저 숨기며 살던 아이였다.
2000년대 초반.
우리 3남매가 모두 성인이 될 때까지도, 우리 가족은 지방 광역시의 지은 지 50년도 더 지난 낡은 한옥에서 살았다. 방 네 칸짜리 집의 두 칸 - 상하방이라고 해서 위 아랫방이 미닫이 문 하나로 나뉘어 있는 구조였다 - 을 빌려 다섯 식구가 지냈는데. 천장에선 쥐들이 뛰어다녔고, 곳곳에 흙이 터져 울퉁불퉁해진 벽은 살짝만 건드려도 흙이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당 끝에는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한겨울이면 방 안에서도 입김이 나왔고, 연탄 2장을 태워 얻은 온기로는 등 한쪽 데우기도 요원해서 밤마다 이불을 껴안고 떨었다.
이런 집안 사정과 전혀 상관없이 그때의 우리 집은 아버지의 왕국이었다.
아버지는 - 순화된 표현을 쓰자면 - 엄격했고, 우리 가족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특히 겨울밤, 우리들 중 하나라도 감기로 기침을 하면 아버지는 짜증을 넘어 분노를 터뜨렸다.
"기침 좀 작작 해라! 너희들 소리만 들어도 정말 구역질 난다! 듣기 싫어 죽겠네."
아버지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내 귀에 대고 소리치는 것 같았던 그때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거대했고, 나는 늘 움츠러들었다. 기침이라도 나면 이불속에서 입을 틀어막고 참았다. 목이 타들어가도, 숨이 막혀도, 그 말을 듣느니 차라리 내가 참는 게 나았다.
그런 아버지가 이제 칠순이 훌쩍 넘으셨다.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시는 아버지께 엊그제 전화가 왔다. 명절 공지문을 출력해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시겠단다. 간단히 알려드리며 '혹시 나이 때문에 해고될 걱정은 없으세요?' 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웃으며 대답하셨다.
"아니, 그만두라는 말도 안 해. 아빠 원래 착하잖아. 아빠만큼 착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 말은 마치 모든 기억을 뒤집어엎는 것만 같았다.
'착하다고? 정말로 착했다고 생각하세요?'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분노는 우리가 아버지에게 '짐'이었던 시절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대학생이 된 나였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도 등록금 때문에 부모님의 싸움은 계속되었고, 아르바이트를 쉬는 날이면 집에서 밥 먹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다. 우리를 먹이고 입히는 일은 아버지에게 무거운 굴레였다. 사실 그 몫은 고스란히 어머니의 것이었지만.
왜 나쁘게 했던 기억들은 다 잊고, 잘해줬던 기억만 좋게 포장되어 남는 걸까? 내가 경험한 아버지와 아버지가 기억하는 자신의 모습은 왜 이렇게 다른 걸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라 부른다. 인간은 불편한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억누르고, 긍정적인 기억만 남겨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버지의 ‘나는 원래 착했다’는 말도 어쩌면 그것의 작용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혹시 나도 내 아이에게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아이가 느꼈던 순간들을 나도 모르게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변화는 내가 더는 손을 벌리지 않게 된 후였다.
내가 생활비를 벌어다 드리고, 독립해서 살게 되고, 가끔 용돈도 드리게 되면서부터였다. 더는 우리에게 욕설을 내뱉지 않게 된 것도 그때부터다. 우리가 아버지에게 짐이 되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는 달라졌다.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너의 자식들은 너의 자식이 아니다'라고 썼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소유하지 않을 때 비로소 진정한 관계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아버지와 우리 사이도 그랬다. 의무의 끈이 풀어지자 오히려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아버지와 우리 사이는 더는 부양과 의무의 관계가 아니었다. 우리가 독립함으로써 비로소 동등한 관계가 되었고, 그때부터 아버지의 다정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벽 기침 소리가 방 안에 울릴 때마다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아버지가 무서워 숨죽여 울던 어린 날의 기억과, 지금 내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겹쳐진다. 나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아버지를 닮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나 역시, 아버지의 흔적을 피할 수 없다는 걸.
나도 사소한 일로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잔소리로 몰아세우는 어른이 되어있진 않은가?
누구나 자신의 선함을 믿는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와,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다를 수 있다. 나에게 나쁘지 않은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면,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설에도 나는 아버지를 뵈러 간다. 아버지의 변화를 이해하고, 나 또한 내 아이에게 선한 기억으로 남기 위해. 결국,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기억 속에서 변해간다.
생각의 여운 · · ·
우리는 때로 다른 사람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진짜 변한 것은 아버지일까요, 아니면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내가 변한 걸까요?
과거는 그대로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흐려지고, 감정은 변합니다. 언젠가 우리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달라질 테니까요. 관계란 그런 것입니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법은 가르쳐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