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항상 늦을까
계획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이다.
He who fails to plan is planning to fail.
– Winston Churchill
학교, 직장, 친구와의 약속, 그리고 중요한 행사까지.
친구들과 약속에도 항상 늦어서 미안하다, 차가 막힌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 등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달고. 기차 시간도 출발 5분 전에 달려서 도착하기 일쑤.
심지어는 가장 친한 친구 결혼식 때도, 어차피 외출하는데 오전 시간이 비는 게 아까워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 줄 모르는 치과 예약을 잡아놓고 결국에는 예식이 시작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도착했다. 늘 사과와 미안함, 핑계는 덤이다.
이왕 가는 거 5분 일찍 여유 있게 도착해도 되는데, 그렇게 한다는 건 나에게는 마치 불가능한 미션처럼 느껴졌다. 우리 엄마도 늘 그러셨다.
외출할 일이 있을때면 "아직 시간 있어"라며 마지막까지 이것저것 하시다가 부랴부랴 준비하시곤 했는데. 준비를 마치고 느긋하게 앉아서 항상 마지막에야 서두르는 우리들을 보고 있던 아빠는, 왜 목까지 닥쳐야(아빠의 표현: 아마도 이제 안 나가면 안 되는 시간이 되었다는 뜻인 듯) 움직이느냐고 화를 내셨다. 어릴 때는 엄마의 그런 모습이 답답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대로다.
나는 이동 시간을 딱 맞춰 계산한다. 버스가 늦게 올 수도 있는데, 또 집에 핸드폰을 두고 나오거나 차키를 안가지고 주차장에 내려가는 등의 변수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의 일화를 떠올려보자면, 지난주 사촌 집에 간 일이 생각난다.
4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내 입으로 분명히 가족들에게는 "2시 반에 출발하자"라고 말해놓고는 3시 반에야 집을 나섰다. 사촌 집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는데. 차 타고 가고 있다는 티는 내야겠으니 차를 조금 달린 후 4시가 다 된 시간이 되어서야 늦겠다고 전화하자, 사촌은 태연하게 말했다.
"괜찮아, 말 안 해도 너는 그런 줄 알고 있었어. 5시에나 올 거지?"
그 말을 듣고 민망해서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부끄러웠다. 내게는 이미 "항상 늦는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엄마 핑계를 대고 지각하는 것도 유전이라고 탓을 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건 그냥 게으름이다. 늘 '준비는 10분이면 충분하지'라고 생각하며 마지막까지 다른 일을 하다가, 부랴부랴 준비를 시작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20분, 30분이 훌쩍 넘게 걸린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시간을 잘못 예측하는 일이 반복되는데도 나는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라고 부르며, 개인이 자신의 작업 완수에 필요한 시간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추정하는 심리적 경향을 설명한다. 하지만 내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나는 시간을 잘못 계산한 게 아니라, 애초에 제대로 계획조차 하지 않았다. 사촌 집에 늦은 것도 교통이 막혀서가 아니었다. 그저 귀찮았고, 게을렀고, '조금만 더' 하다가 시간을 놓쳤을 뿐이다.
처음에는 그저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합리화했다.
하지만 사촌의 "너는 그런 줄 알고 있었어."라는 말을 듣고 나서, 처음으로 내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됐다. 이건 단순히 시간 관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결여된 내 태도의 문제였다.
몇 번의 작은 실험 끝에, 나는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출발하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더 긴 시간의 여유는 아직 무리다). 그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여유롭게 도착한 자리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기다리는 동안 주위 풍경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기다림도 약속의 일부구나."
이제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약속 시간을 앞두고 서두르기보다는, 미리 준비하고 여유를 가지려 노력한다. 지각하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제시간에 도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시간을 조금 더 유연하고 온전히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약속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덤이다.
생각의 여운 · · ·
우리는 늘 시간을 좇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한 박자 늦춘 걸음이 때론 더 많은 것을 보게 합니다. 혹시나 저처럼 매사에 늦는다면, 일단 한 번 10분만 더 일찍 출발해 보세요.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그 자리에서, 평소엔 지나쳤던 풍경과 생각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각하지 않는 인생은 시간을 쫓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누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