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 때마다 확 퍼지는 강아지 냄새.
그러니까 딱히 강아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춘기 아들 방에서는 말하기 미안하지만 늘 강아지 냄새가 난다. 분명 날마다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는 걸 보는데. 문 닫고 게임하는 녀석에게 밥 먹으라고 호출할 때면 나는 그 향기. 사춘기 소년의 방이 으레 이런 것일까.
방문을 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아휴, 좀 씻어라."
나도 안다. 이런 잔소리는 이제 별 효과가 없다는 걸. 아이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대충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그래도 습관처럼 문을 열고, 그 냄새를 맡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
어느 날, 남편이 꽃을 사 왔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집안에 꽃을 들여놓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습관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꽃은 곧 시들고, 물은 금세 썩는다. 하지만 남편은 꽃을 사 오는 걸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꽃이 아니라 '봄을 샀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은 거실에 두고, 반은 애 방에 둘까?"
남편의 말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아이의 방에 꽃을 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이는 꽃에는 별 관심이 없을 것이고, 며칠 지나면 물도 갈지 않은 채 말라버릴 게 뻔했다. 그래도 남편의 제안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려, 작은 유리병에 꽃을 나누어 꽂았다. 아이의 책상 위, 모니터 옆에 두었다.
반나절이 지났다. 아이의 방에서 꽃집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 잠시 생각했다. 문을 열 때마다 밀려오던 익숙한 퀴퀴함 대신, 은은한 꽃향기가 방을 채우고 있었다. 봄의 냄새였다. 이상하게도 방문을 열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아이에게 하는 말투도 조금 달라졌다.
- "방이 좋네."
- "꽃이 있으니까 기분이 다르지 않아?"
어쩌면 내 말투 때문이었을까. 아이도 대답하는 태도가 달랐다.
"음, 그런 것 같기도."
꽃 한 송이가 아이의 방을 바꿔놓았다. 아니, 사실 바뀐 것은 내 감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환경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지 모른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프라이밍 효과'라고 부른다고 한다. 커피 향이 나면 우리는 집중력이 높아지고, 비 오는 날에는 이유 없이 센티멘털해진다. 그런 식이다. 마트에서 흐르는 음악 템포에 따라 걸음이 빨라지기도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공간이 우리의 태도를 결정한다.
나는 아이의 방을 열 때마다, 그곳에서 퍼지는 강아지 냄새와 함께 '사춘기'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단어에는 언제나 약간의 피로와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러니 그 문을 열면서 나오는 말투도 저절로 건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꽃이 그 모든 상황을 뒤집어놓았다.
꽃향기는 인위적인 디퓨저와 달랐다. 화학적으로 조합된 향료가 아니라, 꺾어진 줄기로 물을 힘겹게 끌어올려 퍼뜨리는 자연의 냄새였다. 그것은 강렬하지 않았지만, 서서히 공간을 채우며 분위기를 바꿨다.
그리고 나는 문을 열 때마다 더 이상 '씻어라'라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는 여전히 제 스타일대로 살고 있다. 방은 여전히 어수선하고, 씻는 습관이 갑자기 달라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문을 열 때마다 좀 더 부드러운 말을 건넨다.
그러니까, 이건 아이의 변화가 아니라 나의 변화였다.
봄이 오면 사람들은 괜스레 창문을 열고, 옷을 가볍게 입으며, 걸음이 느려진다. 기온이 조금 오르면 손에 잡히는 커피도 달라지고, 무심코 틀던 음악도 변한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는, 거창한 결심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나는 앞으로도 방문을 열 때마다 '씻어라'라는 말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 박자 늦출지도 모른다. 대신, 잠시 꽃향기를 맡고, 조금 더 예쁜 말을 골라서 건넬 수도 있을 것이다.
봄은 그렇게 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