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이었나, 아버지가 특발성 폐섬유화 진단을 받은 그날, 병명은 생소했지만 그 무게는 바로 실감됐다. 아버지의 폐가 굳어간다는 설명을 들으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눈물이 먼저 나왔다는 것, 그리고 밤새 인터넷을 뒤적였다는 것만 기억난다.
"치료제가 있긴 한데 너무 비싸서..." 인터넷 게시판에는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떠난 이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진단받은 시점은 의료보험 적용이 결정된 직후였다. 작은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약은 있었지만 부작용은 햇빛을 받으면 피부가 까매진다는 것. 그쯤이야. 나는 몇 달 간 효녀가 되었다. 선크림을 여러 통 사서 보내고, 클렌징 티슈도 챙겨서 보냈다.
전화를 자주 드리기 시작했다.
어색했다. 평생 '아버지'라는 단어와 '애틋함'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어릴 적 아버지는 별 이유 없이 화를 내셨다. 단지 나물 무침이 된장이 아니라 소금과 참기름에 무쳐졌다는 사소한 이유 때문에도 저녁 밥상은 자주 엎어졌다. 다섯 식구 모두가 밥먹기를 멈추고 어머니는 자리를 수습해 다시 나물을 무쳐오셨다. 그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서 울 수도 없었다. 그런 기억들이 나를 아버지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돌아온 아버지에게 안부 전화를 건넨다는 게 이상하게도 자연스러웠다.
"어, 그래. 괜찮아. CT 찍었는데 아직은 폐기능이 75% 남았대."
아버지는 내 전화에 과하게 기뻐하셨다. 평소 내 성격으로 보면 그럴 만했다. 한 달에 한두 번, 길어야 5분 남짓한 통화였지만, 아버지에겐 큰 선물처럼 느껴졌나 보다.
그러나 처음 몇 번 선크림과 클렌징 티슈를 사서 보낸 뒤로 더 이상 선크림은 사서 보내지 않았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전화도 안 하게 됐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잊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아버지의 병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나의 관심도 그만큼 무뎌져갔다. 삶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처음엔 충격적인 일도 시간이 지나면 그저 일상이 된다.
지난주,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 기침이 너무 심해. 길게 대화하기도 힘들정도인데, 목에 좋은 거 뭐 없냐? 이비인후과는 계속 다니는데 약을 먹어도 별 효과가 없어야. 여기 말고 서울로 병원을 찾아가야하는지... 뭐 먹어야 되는지 인터넷 좀 찾아봐라."
엄마는 도라지를 말려 가루로 만들고, 꿀을 섞어 아버지께 드렸다고 했다. 정성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속에서는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
'이제 점점 심해지는 거지. 병이 진행되는 건데 더 나아질 리는 없잖아.'
메마른 생각이었다. 그래도 프로폴리스 영양제를 주문해 보냈다. 아버지는 기침을 하면서도 전화로 고맙다고 하셨다. 짧은 통화였지만 힘듦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심각한 질병이나 죽음 앞에서 우리 마음은 자기보호를 위해 일종의 방어막을 친다. 처음에는 충격과 고통을 온전히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정들이 무뎌진다. 마치 뜨거운 물에 들어갔을 때 처음엔 화끈거리다가도 곧 익숙해지는 것처럼. 나는 아버지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가만히 돌아보니, 내 속에서는 또 다른 심리적 과정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애도의 여러 단계 중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정과 분노를 거쳐 타협과 우울로 가는 과정에서, 나는 분노를 우회해 바로 무관심이라는 형태의 우울로 건너뛴 건 아닐까.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내 안에 남아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지금의 나를 움직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스무 살. 남자친구에게 목걸이를 선물받고 신 나서 집에 오던 길에, 집 앞 공중전화에서 아버지를 마주쳤다. 선물 받은 목걸이를 기분좋게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대화를 이어가려는 순간,
"아빠 어디 전화 좀 하고 들어갈게.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라."
나는 전화 상대가 누구인지 느낌적으로 알았다. 내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의 여자 문제로 큰 고비가 있었기에. '아... 아직도 안끝났구나.'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내가 이렇게 심리적 거리를 두면서도 어딘가에서는 죄책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다는 자책감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오늘 아침,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흐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유한한 시간 속에서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은 무감각함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무뎌짐이란 상실을 준비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버지의 기침 소리에 담긴 고통, 그리고 작은 선물에도 과하게 느껴지는 고마워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을 느끼는 나의 능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무뎌짐을 인식하는 순간이 바로 다시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일 수 있다.
오늘 저녁,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평소와 같은 짧은 대화였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게 들었다. 아버지의 숨소리 하나, 말끝에 묻어나는 작은 한숨까지도 온전히 들으려 했다.
"요즘은 어떠세요?"
"그냥... 비슷해. 기침이 좀 심해졌네."
"많이 힘드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니... 괜찮아."
그 '괜찮아'라는 말에 담긴 무게를 처음으로 제대로 느꼈다. 아버지는 결코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 걱정을 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무뎌짐과 감각의 회복 사이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라는 사실을.
시간은 감정을 무디게 만들지만, 그 무뎌짐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간은 역설적으로 감정을 되살린다. 아버지의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무감각함 속에 숨어있던 내 마음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화를 끊으며 눈물이 흘렀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슬픔도, 연민도, 사랑도 아닌 복잡한 감정. 어쩌면 이것이 진짜 애도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을 위한, 그리고 남겨질 나를 위한 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