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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Jun 06. 2020

걍 조퇴한 내게 상사가 건넨 말

없는 병에 걱정을 건네는 상사 vs. 없던 병도 만들어주는 상사

목요일 오후였다. 갑자기 어딘가 아파왔다. 구체적으로 어디가 아팠냐고 묻지 말길. 그냥 아프고 싶은 날도 있는 거니까. 주말이 그리워 아플 수도 있는 거니까.


결국 조퇴를 냈다. 조퇴 장소에 적힌 '병원'이라는 두 글자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양심의 가책이 더 커지기 전에 모니터를 껐다.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병원 대신 들른 어느 공원에서 오후의 햇살과 바람을 처방받았다.


처방의 약효는 확실했다. 다음날, 상쾌하게 출근했다.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전날 조퇴를 허락해준 상사가 내게 다가왔다. 방금 뽑은 커피 한잔을 내밀며 내게 물었다.


"아픈 데는 괜찮아?"


잠깐 망설이다 괜찮다고 대답했다. 미소가 너무 환하면 들킬까 싶어, 반쪽짜리 미소를 지었다. 어제 공원에서 나를 봤으려나? 어느 병원 다녀왔냐고 묻진 않겠지? 내 걱정에 아랑곳 않고 그는 자리로 돌아갔다. 방금 뽑은 커피는 검고 따뜻했다.


그날은, 아주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금요일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듣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파서 조퇴하는 사람 뒤로 이런 말을 남기는 상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프지도 않은데 조퇴를 내고 말이야. 다음부턴 진단서 받아야지 원…"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다른 직원을 두고 한 얘기였지만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사람이 정말 아픈지, 그렇지 않은지 그 상사는 어떻게 아는 걸까? 설사 알았다고 해도, 아무리 혼잣말이라도, 꼭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그날은,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은 기분으로 일했던 기억이 난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통제와 억압과 권위보다는 자율과 책임과 신뢰가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단순히 이끌어주는 리더보다는 구성원들이 능력을 발휘하게끔 북돋아주는 리더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걍 조퇴한 내게 커피와 걱정을 건네던 상사. 그 상사에게 가끔 전화를 드리고 싶은 건, 꼭 세상의 변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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