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졸린 눈을 하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매주 있는 회의지만 적응이 쉽지 않다. 숨기 좋은 맨 끝자리에 앉았다. 특별한 안건이 있겠나 싶어, 받아 적기나 할 마음으로 무심히 노트를 폈다.
회의가 시작되고 이런저런 논의가 오갔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회의의 모습도 바꾸었다. 일단 불필요한 회의가 줄었다. 회의 참석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기침 예절은 기본이고, 귓가엔 마스크가 걸려있다.
회의가 중반을 넘어설 무렵, 우리 부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비상근무 형태로, 우리 부서와 옆 부서가 투입된다는 내용이었다. 뭐라고? 파묻었던 고개를 벌떡 들었다.
예상하지도 듣지도 못한 얘기에 당황했다. 이게 무슨 소리가 싶었다. 작은 문제 상황을 봉합하기 위해 두 부서의 희생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우리 부서 관련 문제이긴 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알지 못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식의, 전체 조직으로 보면 공평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해결 방안이었다.
잠이 싹 달아나 눈이 뜨였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나의 논리를 빠르게 정리했다. 내가 혼자 감당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나의 발언에 따라 몇 달간 우리 부서의 운영이 결정될 터였다. 이토록 중요한 회의였다면 미리 알려줘야 할 거 아냐! 우리 부서 선배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미 늦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부서를 대표하는 나의 역할이 중요했다.
우리 부서의 대표로 앉아있는 내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바보처럼 가만히 있다가, 우리 부서로 돌아가 비보를 전할 생각에 아찔했다. 저기요…. 힘겹게 발언권을 얻었다. 내가 생각한 논리, 우리 부서가 투입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방안의 문제점에 대해 늘어놓았다.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맞으며,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이야기했다. 두려움과 떨림을 들킬까 싶어 나의 검은 마스크를 더 끌어올렸다.
결과는 보류. 관련 부서를 대충 투입해버리는 미봉책이 아닌 다른 방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회의실을 나오는데 화가 났다.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함부로 얘기하는 그들의 태도와 남의 일처럼 말하는 무심함. 깊이 고민하지 않고 기피하려고만 하는 모습들. 연달아 담배 세 대 쯤 피우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내가 존경하는 한 선배도 나를, 우리 부서를 위해주지 않았다. 같은 부서였을 때 든든했던 그가 이제 내 편이 아니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실이었다. 나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것 같았다. 회의가 끝나고 웃지 못하는 못하는 이는 오직 나 하나였다.
눈 뜨고 코 베일 뻔했다는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다. 다만 회의의 결과를 우리 부서에 전달하고 기운이 쭉 빠졌다.
하지만 눈에는 ‘빡’하고 힘이 들어갔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 눈 부릅뜨고 살자! 따위의 다짐이 마음에 새겨졌다. 다음부터 내가 가만있나 봐라. 내 권리와 이익을 놓치나 봐라. 앞으로 내 것부터 챙길 테다….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 남에게 함부로 내어주지 않는 것. 나와 내 주변부터 지키는 것.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앞으로 눈 부릅뜨고 살아갈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게 어른이 된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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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매일,
조금씩 준비하여 책 한 권을 만들었습니다.
6개월 간 브런치에 연재한 글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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