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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Jul 11. 2020

돈벌레와 돈벼락

예상하는 일에 대해

우리집은 여름이면 돈벌레가 나오곤 한다. 주로 화장실에서 목격되는데, 아무래도 화장실 하수구가 녀석의 출입문이지 싶다.


돈벌레를 보면 돈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있기는 하나, 그리고 익충(益蟲)이라고는 하나, 그 모습은 정말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발발거리는 수많은 다리와 요리조리 움직이는 몸체…. 아, 그만하련다. 녀석을 묘사하려니 소름이 돋는다.


녀석이 나타나면 똑바로 응시하지 않는다. 측면 45도 각도로 녀석의 위치만 파악한다. (자세히 보면 잡을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주먹보다 크게 둘둘 말은 휴지 뭉치로 잽싸게 녀석을 덮친다. 이 동작은 아주 빨라야 한다. 만약 놓치기라도 한다면 난리 부르스 추게 될 것이다.




 *예상하는 일은 이롭다

며칠 전에도 돈벌레가 나왔다. 약간 긴장한 상태로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세면대 아래에서 녀석이 졸고 있었다. 생각보다 작은 녀석이었다.


크게 놀라지 않고 잡을 수 있었다. 휴지로 녀석을 잡아 올려 변기물을 내리며 생각했다.


음… 내가 왜 이렇게 평온하지? 심지어 오늘은 돈벌레가 좀 귀엽잖아.


약간의 낯설음이었다. 내가 돈벌레를 이렇게 평온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마도 돈벌레의 출몰을 예상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혹시 난 이 상황을 예상하며 미리 준비한 게 아닐까. 1) 먼저, 그동안의 경험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여름의 우리집 화장실은 돈벌레가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2) 그리고 녀석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의 심장은 놀랄 준비를 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녀석을 보고도 심리적 충격을 덜 받을 수 있었다.  3) 마지막으로 나의 뇌는 이 상황을 대처하기 위한 나름의 매뉴얼이 있었다. (곁눈질로 보기-휴지 준비하기-덮치기-변기에 던져 넣기)


그렇다. 위험하고 놀랄만한 상황에서도 내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위험을 예상한' 덕분이었다. 예상했기에 놀라지 않고 상황에 맞게 대처할 수 있다. 무언가를 예상하는 일은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예상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렇게 화장실을 나오는데 책장에 있는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년에 출간한 나의 첫 책이었다. 어떤 일을 예상하는 게 유익하지 않았던 경험 하나가 떠올랐다.


돈벼락을 예상했다. 내가 쓴 책이 엄청나 베스트셀러가 될 줄 알았다.


나의 첫 저서가 그럴 것이라 예상했다. 떼돈을 벌게 될 거라 '기대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기대를 부풀렸고, 부푼 만큼 크게 실망했다. 첫 책이 출간되고 한동안 우울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기대하는 일은 '프레질(fragile, 충격에 쉽게 부서지는)'하다고 신박사님이 그랬다. 묵묵히 하면 돈은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1) 나는 현실도 모르고 기대감만 키웠다. 그렇게 충격에 약해졌다. 2) 결국 기대에 못 미치는 도서 판매 실적이 충격으로 다가왔고, 3) 나는 부서졌다. 부푼 기대감이 뻥하고 터졌다. 좌절했다. 주저앉았다.


함부로 예상하는 일은 정신건강에 해롭다. '성공을 예견하는 '은 그다지 좋은 전략이 아니었다. 건방지고 무례하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이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일은 중요하다. 개인이나 조직의 전략,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여기엔 앞으로의 위험 요인을 분석하고 대비하는 일이 포함된다. 하지만 여기에 '이건 반드시 대박이 날 거라며' 미리 축포를 터뜨리는 일은 포함되지 않는다.


돈벌레는 예측하고 돈벼락은 기대하지 않는다. 위험은 예측하되 성공은 함부로 예견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


이 깨달음은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어느 날의 내 다짐과도 닿아있었다.




|커버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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