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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Aug 01. 2020

행원님 안녕하세요(1)

지인의 지인이 지점장입니다

지인의 소개로 은행에 방문했다. 대출을 받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싼 이자를 받기 위해서였다. 금리가 많이 내려 간 요즘이 대출을 갈아타기에 적기라고 생각했다.


소도심에 위치한 작은 지점이었다. 그리고 지인이 소개해 준 사람은 무려 '지점장'이었다. 지인 찬스가 좋긴 좋구나 생각하며 은행 대기석에 앉아있었다.


저기 번쩍이는 황금색 브이아이피 룸에 들어가겠지? 지점장 재량 우대금리 같은 걸 받으려나?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키고 있는데 그가 나타났다. 지인의 지인. 그러니까 지점장님이었다.


그는 대출상담 창구로 나를 안내했다. 아… 브이아이피 룸을 기대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도대체 난 무엇을 기대한 걸까. 그의 지인의 지인일 뿐이면서.


안내받은 창구에서 내가 마주한 사람은 젊은 남직원이었다. 명찰에 행원이라고 적혀있었다. 딱 봐도 젊은 신입사원이었다. 그러니까 그 행원은 내 지인의 지인의 부하 직원이었다.


  "잘 해드려."


이 말을 시작으로 지점장님의 업무 지시가 시작되었다. 그는 행원 옆에 딱 붙어 섰다. 그의 지시에 따라 행원은 좋은 조건의 대출을 위한 사항을 따져보았다. 행원은 넵, 넵, 넵을 반복하며 빠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나는 필요 서류를 제출하고 그 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둘 모두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정말 바빠 보이는 지점장님을 찾아온 것도 죄송했고, 나 때문에 상사의 전담마크를 받으며 일하는 행원에게도 미안했다.




상사의 빠르고 연속된 지시에도 그 행원은 탁탁 일을 처리했다. 그런데 불쑥 지점장님이 행원에게 물었다.


  "내가 널 너무 귀찮게 하니?"


  "아, 아뇨!"


단 0.5초 만에 나온 대답이었다. 나는 웃을 뻔했다. 누가 봐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는 상황에서, 그걸 묻는 사람과 그걸 또 아니라도 대답하는 사람이라니. 어느 드라마 속 한 장면 같았다.


그저 웃을 수만은 없었던 건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가 지나치는 깍듯함, 열정이 가득한 눈빛, 물기가 가득한 손까지 그 행원은 신입 때 내 모습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누락된 서류가 있어 다음에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조금 일찍 퇴근해서 방문하겠다고, 나는 그 둘에게 말했다. 그런데 지점장님은 끝까지 나를 배려해주셨다.


  "연차 쓰지 마시고요. 퇴근하고 천천히 오세요. 이 친구는 여기 여섯 시 반까지 근무하니까요."


아 이런. 배려는 감사했지만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그 은행의 정확한 퇴근 시간은 모르겠으나, 젊은 행원이 초과 근무를 강요받는 것 같았다. 그것도 나 때문에.


다음에는 무조건 더 일찍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신입 사원의 퇴근을 늦출 순 없기에. 그리고 다음엔 손이 축축한 그 행원을 위해 시원한 커피 하나라도 사 오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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