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또 왔어요
불쑥 지점장이 물었다.
"내가 널 너무 귀찮게 하니?"
젊은 행원은 빠르게 대답했다.
"아, 아뇨!"
창구에 앉아있던 나는 웃을 뻔했다. 둘의 대화가 어느 드라마 속 한 장면 같았다. 저 상황에서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했다. 아무리 솔직한 이도 상사에게 "난 당신이 불편해요"라고 직설적으로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미진한 서류를 챙겨 다시 은행에 방문했다. 이번엔 바로 번호표를 뽑았다. 곧 그 행원과 마주했다. 그는 여전히 바르고 깍듯했다. 내게는 조금 편하게 해도 되는데 말이다.
나는 그에게 90도가 넘는 인사를 받았고, 그는 나에게 작은 음료수 박스 하나를 받았다. 아이스커피 대신 챙겨 간 나의 작은 성의였다.
"이거 비싼 거 아니에요?"
너스레였을까. 아니면 도라지 음료여서 그렇게 생각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재직증명서, 원천징수영수증 등을 그에게 주었다. 내가 직장인임을 증명하는, 내가 누구 밑에서 얼마만큼의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류들이었다.
서류를 주고 금리를 낮추기 위해 적금을 하나 들었다. 그리고 은행 앱을 깔았다. 통장을 만들었다.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금리가 꽤 내려갔다.
그리고 금융상품 하나를 추천받았다. 절세상품의 일종인 IRP였다. 연말정산이 이렇고… 세액공제는 저렇고… 퇴직연금으로…. 행원의 설명을 들었지만 잘 이해되진 않았다. 내게 그리 필요한 거 같진 않았다.
나는 고민하다 그에게 물었다. 그가 불편하게 않게 조심히 물었다.
"이거 가입하면 행원님께 좀 도움이 되나요?"
"아, 예. 해주시면 저야 고맙죠."
여전히 공손한 그가 수줍게 대답했다. 나는 다시 고민했다. 이 상품을 가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 지난번부터 내가 그를 귀찮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작은 미안함을 갖고 있던 터였다.
결국 적은 금액으로 IRP에 가입했다. 손해 보는 상품은 아니었고, 그의 직장 생활에 작은 기여라도 하고 싶었다. 가입을 결정하자 행원의 얼굴에 기쁨이 비쳤다.
이번 대출은 성공적이었다. 원하는 만큼의 금액을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받았고 기분 좋은 사람도 만났다. 이 은행을 소개해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지인의 지인인 지점장님께도 연락을 드렸다.
집으로 돌아와 행원에게 받은 명함을 꺼내보았다. 그의 명함을 쓰다듬으며 그의 성공적인 신입 적응기를 응원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