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길을 운전하며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다. 쏟아진다는 표현 외에 딱히 알맞은 표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덕분에 도로는 워터파크가 되었다. 차들이 촥촥 첨벙첨벙거리며 도로를 건넜다. 어쩌면 우리의 차는 수륙양용 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지각이다. 제시간에 집에서 나왔지만 이렇게 물이 찬 도로에선 속도를 내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예상하고 조금 일찍 나왔으면 되지 않았겠냐고 조언해주지 말길.
그래. 어차피 늦은 거 뭐. 천천히 가지 뭐. 물살 타고 흘러가 듯 차근히 가는 거다. 오늘은 좋은 핑계도 있잖아.
음악을 틀었다. 차창에 부딪혀 깨지는 빗방울을 보며 음악을 들었다. 기분이 좋았다.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뒷일은 생각지 않고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며 잔뜩 음악을 듣고 싶었다.
분주한 빗소리. 그 속에 있으니 꽤 몽환적이었다. 마치 술이 덜 깬 기분. 세상에 나만 있는 것 같은.
지각을 선고받고도 이런 감상에 젖다니. 내가 이렇게 평온하다니. 아!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건 받아들이기로 했었지.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살기로 했었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주차장이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니 천천히 오라는, 늦어도 괜찮으니 안전하게만 오라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조직의 기강보다 어떤 규정보다 당신을 걱정한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퇴근할 땐 비가 많이 오니 오늘은 일찍 퇴근해도 좋다는 연락이, 혹시 오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