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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Aug 15. 2020

서울 지하철 필수품

마스크 말고 또 다른

갈까 말까 고민했다. 수도권 지역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히 늘고 있었다. 예정했던 서울 일정을 취소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취소하기엔 너무 소중한 일정이었다. 이번 주 내내 오늘이 오기만을 기다렸단 말이다.


결국 가기로 했다. 아주 조심히 다녀오면 될 거 같았다. KF94 마스크를 끼고 서울 가는 버스에 올랐다.






내 걱정과 달리 서울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었다. 하긴 코로나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할 순 없겠지. 코로나 핑계로 장마 핑계로 집에만 있던 나는 그냥 집이 좋아서 그랬는지 모른다.


그런 서울 사람들에게도 원칙이 있었는데 그건, 확실한 마스크 착용! 지하철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정확한 방법으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이제 마스크 쓰기는 하나의 문화이자 에티켓이었다. 현대인의 필수 매너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철 역내 방송은 끊임없이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 역내 방송 소리는 평소보다 울렸는데, 그것이 습한 날씨 때문인지 방송 담당자가 볼륨을 높여서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예민해서 그랬을 수도.


강원도 촌놈은 눈만 끔뻑거리며 서울 지하철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어딘가 긴장한 모습들이었다.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전화 통화조차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스마트폰만 들여다 볼 뿐. 불과 몇 개월 새에 세상이 변했다.


환승을 위해 내렸는데 또다시 역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하철 안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고객을 발견한 경우 '또타앱'으로 신고해주시면 지하철 보안관이 해당 위치로 출동하여…


이제 마스크 안 쓰면 잡혀가는구나. 뉴스에서 대중교통 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대해 들은 거 같기도 하다. 촌사람은 마스크 귀걸이를 더욱 질끈 동여매었다.






광복절이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다른 데 있었다. 코리아 대신에 코로나에 있었고, 태극기 게양 대신에 태극기 집회에 있었다. 어느 때보다 광복의 의미가 퇴색되었을 거 같아 마음이 쓸쓸했다.


이런 생각에 잠겨 왕십리역을 지나는데 정신이 번뜩 들었다. 어느 승객이 자신의 아이에게 다급히 말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들! 손잡이 만지지 마!


코로나 시대엔 지하철에서 아무것도 잡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와 균형감각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시원한 얼굴로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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