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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Aug 16. 2020

매일 홀로 있는 아내에게 약속했다

아내에게 약속했다. 책 하나를 쓸 때마다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가 주겠다고. 이 말을 듣고 그녀는 뛸 듯이 기뻐했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깨달았을 것이다. 이 약속이 그리 좋은 거래가 아니었음을.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남편이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을 것임을. 어쩌면 그녀는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


퇴근 후 글을 짓는 남편을 둔 죄로 나의 아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아이도 없는 조용한 집에서 나는 빈 모니터 화면을, 그녀는 스마트폰 화면을 마주한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첫 번째 책 출간 후 고급 식당에 갔다. 분명 '프랑스 가정식'을 표방했는데 1인분에 10만원도 넘는 곳이었다. 스토리에 음식 메뉴를 곁들인,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결국 만족스런 표정으로 식당에서 나왔다. 처음엔 손이 떨렸지만 경험하고 나면 결재가 아깝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음식이 아닌 경험을 샀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인상적인 곳이었다. 비싼 건 그 가치를 하는구나, 돈 있는 사람들의 삶은 나와 많이 다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이후에 아내가 힘들어하면 이때의 추억을 떠올려주었다. 그때 정말 좋았었지 하고. 그럼 그녀는 잠자코 있었다. 징징거리다 금세 눈물 훔치는 아이처럼.






어제는 두 번째 책이 나온 기념으로 또 고급 식당을 찾았다. (아! 절대 우리는 돈 많은 사람들이 아님을 밝힌다.) 오래 참고 기다려준 그녀를 위해 또 다른 고급 식당을 찾았다. 그날따라 손님이 많아 못 먹을 뻔했지만, 친절하게도 우리의 입장을 허락해주었다. 그제야 '공감'이란 의미의 식당 상호가 눈에 들어왔다.


스테이크와 리조또, 그리고 와인 한 잔을 시켰다. 혹시 몰라 아내는 물을 마셨다. 와인은 오직 나를 위해서였다. 그녀를 위한 자리인지 나를 위한 자리인지 헷갈렸지만 그냥 그렇게 했다.



역시 음식은 기대 이상이었다. 좋은 재료로 천천히 만든 음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싼 가격은 아니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음식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의 가족에게 매일 이런 음식을 먹일 수 있을까. 아무래도 매일은 무리였다.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이런 거 자주 사줄게.


그래서 이렇게만 말했다. 약속이자 공언이자 다짐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나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돈이 좀 필요하겠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좀 있으면 떵떵은 아니어도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거 같다고. 급작스런 불행이나 어려움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돈을 좀 벌어야겠다고.






또 가고 싶다. 아내와 고급 레스토랑에 또 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내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이다. 다음에는 우리 둘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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