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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Dec 25. 2019

당신의 브런치가 안 뜨는 이유

아직도 산타를 기대하는 어른이들에게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띵동. 오늘도 어김없이 카카오톡 알림이 울린다.


브런치 님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다. 아직 잠은 덜 깼지만 글을 읽어나간다. 속이 쓰리다. 일어나서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다. 그렇게 공복에 브런치를 읽어나간다. 위(胃) 아무것도 넣지 않았지만, 뇌(腦)에 텍스트를 밀어 넣는다.




일상의 변화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을 알고 아침 일상이 변했다. 좋은 글을 손쉽게, 그것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는 플랫폼이라니. 스마트폰만 들면 수많은 활자를 만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영양가 있는 글은 꽤나 적다. 지나치게 가벼운 인터넷 기사, 홍보성 짙은 블로그 포스팅은 마음의 허기만 더한다. 그러나 브런치는 다르다. 다양한 분야의, 적당히 정제된 글을 만날 수 있는 이 곳은 심적 허기를 달래기에 충분하다. 가끔 브런치는 정말 내 아침밥을 대신하기도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저녁 일상도 변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내 서재로 향한다. 매일 또는 격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래 봤자 스무 개 남짓한 글을 썼지만,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이지만, 글을 쓰고 있다. 소리 없이 구독과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해하며 작품을 채워 가고 있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작가 지원 시스템이 그것이다. 회원가입만 하면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는 타 플랫폼과 달리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심사를 통과한 이들에게는 작가라는 호칭이 부여된다. 자신을 글과 매거진을 발행할 수 있는 채널도 부여된다. 이러한 시스템 덕에, 어느 정도 검증된 이들이 글을 채워가는 공간이기에, 브런치엔 좋은 글들이 많다. 나는 운 좋게 심사를 통과했다.


브런치는 무엇보다 '글 자체'에 집중한 플랫폼이다. 글을 쓰고 읽기에 최적화된 폰트와 페이지 레이아웃을 제공한다. 맞춤법 검사 기능도 웹페이지에서 바로 사용이 가능해 매우 편리하다. 토종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인 <한글>로 집필 작업을 하던 나는 이제 브런치에서 글을 쓴다. 여기에서 쓴 글은 하나의 작품이 된다.



버튼의 용도

브런치는 글 자체에 집중한 플랫폼이자 '요즘' 플랫폼이다. 그래서 다른 소셜 미디어처럼 구독, 라이킷, 댓글, 공유 버튼이 있다. 물론 유튜브처럼 구독과 좋아요를 노골적으로 요구하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이런 버튼은 중요한 요소이다. 독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치이자, 작가들이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한다.


이런 버튼의 또 다른 기능은 각 채널의 인기를 수치화하는 것이다. 채널 간의 비교가 매우 쉬워진다. 어느 채널은 개설 며칠 만에 구독자가 수백 명에 이르고, 어떤 채널은 몇 개월이 지나도 방문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채널의 수적 계량화는 누군가에겐 동기를 부여하지만 누군가에겐 포기를 종용할지 모를 일이다.



헛되고 헛된 기대

그건 그렇고. 내 글은 언제 브런치에 뜨는 것일까? (여기서 '뜬다'는 일순간 유명해져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걸 의미한다.) 언젠가부터 나의 글이 브런치 상위에 노출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아침 8시의 카카오톡 알림은 내게 괜한 설렘을 준다. 설렘은 곧 실망이 된다. 헛된 기대라는 걸 알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이제는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던 것이 '행운'이라는 것을 알고부터다. 그렇다. 나는 운 좋게 나의 글이 유명해지길 바랐던 것이다. 노력하지 않고 로또 1등을 바란 것과 다름없다. 나는 정정당당하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네 잎 클로버에 목맨 사람은 세 잎 클로버의 가치를 모른다. 그래서 행운을 바라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 행운이 터무니없으면 없을수록 더욱 불행하다. (장대한 꿈을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꿈을 꾸는 것과 오로지 운만 바라고 있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이다.)


정말로 운이 따라서 내 브런치가 급상승해도 문제다. 위험하다는 걸 안다. 유명해지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관심에는 시기와 질투, 날 선 비판도 포함된다. 실력이, 상황이, 멘탈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뜨지 않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지나치게 큰 옷을 입은 사람은 넘어지기 마련이다.



기대 대신 기다림

헛된 선물을 기대했던 날들을 반성한다. 나는 산타가 없음을 알면서도 그의 선물을 기대한 어른이였다. 노력하지 않고 '운'에 기대면 안 된다. 꾸준히 노력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운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실력을 차분히 쌓아가면 반드시 때가 오리라 믿는다.


이것이 내 브런치가 안 뜨는 이유이다. 당신의 브런치가 안 뜨는 이유일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의 실력이 충분한데 너무 오래 기다렸다면, 조금만 더 기다려라. 당신의 '때'가 이제 곧 당신의 방문을 두드릴 것이다.




걱정이 하나 생겼다. 이 글이 내일 브런치에 뜨면 어떡하지? 난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 조금 더 나를 갈고닦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이 글은 내일 당장 뜨면 안 된다. 진짜 안 된다.


아, 이건 헛된 기대가 아니다.

그냥… 걱정이다.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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