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재 Dec 24. 2019

민원에 대처하는 대기업의 자세(2)

의문이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의문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번호는 02-1577-XXXX.
씨유 고객센터라는 것을 직감했다.


전화를 받았다. 역시나 씨유 본점이었다. 전화기 너머의 남자 상담원은 고객으로서 내가 겪었을 불편에 대해 이야기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사실 그 상담원이 죄송할 건 없는데 말이다.) 차분한 목소리로 나의 불편함과 불쾌함을 공감해 주었다. 내가 워낙 빈정거리는 투로 불만의 문장들을 써서 그런지 상담원의 목소리에서 긴장이 느껴졌다.


내가 씨유 고객센터에 접수한 글은 꽤 길었지만 요점은 간단했다.

1. 최소한의 직원 교육 실시

2. 택배용 펜과 테이프의 비치


나의 첫 번째 불만인 직원 교육에 대한 부분은 확실한 사과를 받았다. 그리고 해당 근무자에 대한 재교육을 약속받았다.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까지 한다고 하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두 번째 불만인 택배용 펜과 테이프 비치 문제는 씨유 내부적인 규정이 없다고 했다. 각 매장별로 자율적인 사항이라 특별히 강제하진 않는다 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고려해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두 답변 모두 예상한 그대로였다. 하지만 어제의 불쾌했던 감정이 많이 누그러졌다. 즉각적이고 성실한 답변을 들으니 (상담원이라는 대리인을 통해 들은 답변이었지만) 기업에서 고객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이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생겼다.


고객 존중을 실천하고,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구나.


사실 전날의 불쾌한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전화를 건 상담원에게 내 불만을 재생산하지 않았다. 전화상담원들의 고충에 대해 익히 들어온 나였다. 민원 업무가 얼마나 힘든지 경험도 해보았다. 한 끗 차이로 갑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하루 종일 나 같은 고객을 상대할 그 상담원이 안쓰럽기도 했다. 떨리는 그의 목소리도 여기에 한 몫했다.


통화를 마치고 이틀간의 내 행동을 돌아봤다.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이성적으로 바르게 판단했는지, 상대에게 실수하거나 상처 준 일은 없는지 반성했다. 괜히 우리 사회에 작은 불만의 씨앗만 낳은 건 아닌지 반성했다.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한 청춘의 일자리를 위협한 건 아닌지 반성했다.


해프닝은 이렇게 끝이 났다. 나는 불만 어린 나의 행동을 나름 정당화했다. 할 말 했다고. 고객의 권리를 행사했다고. 그리고 "다신 씨유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했던 나는…


그 날 이후, 다시 씨유에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민원에 대처하는 대기업의 자세(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