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재 Dec 23. 2019

민원에 대처하는 대기업의 자세(1)

나도 불편한 고객이 되어 보았다

지난 10월, 집 근처 씨유 편의점에 방문했다. 택배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편의점은 생각보다 소란스러웠다.

  “피융. 피융. 두두두두두.”

리얼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 텔레비전을 틀어놨나, 하는 순간. 숨어서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 점원을 발견했다.

 “형. 지뢰 매설 따고 오늘 기습 작전에서 자진해서 나선 이유가 뭐야. 무공훈장 받아서 나 제대시키려고...”

그가 워낙 큰 소리로 영화를 보고 있었기에 배우들의 대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였다. 내가 들어온 것을 모르나 싶어 말을 걸었다. 택배용 마커펜과 테이프가 없느냐고.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 하는 수 없이 펜과 테이프를 그 자리에서 구매해 택배를 접수했다. 그리곤 편의점을 나왔다. 그때까지도 영화는 멈추지 않았고, 시끄러운 소리는 줄어들 생각이 없었다.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 점원은 오고 가는 내게 인사 한마디 없었다.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들어가며 나오며 인사를 건넸다. 시끄러운 소음 역시 내 기분을 망쳤다. 그는 내가 있으나 없으나 제 할 일(영화감상)에 충실했다.

택배 하나 보낸 주제에 내가 지금 갑질을 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아니다. 그가 인사 한 번만 했어도. 아니 내 인사를 받아주기만 했어도 기분이 이토록 처참하진 않았을 거다.

나는 타고 왔던 자가용에 올라타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씨유 홈페이지 고객상담실을 찾았다. 원래 컴플레인이 많은 스타일이 아니지만 이건 꼭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차가운 겨울, 차 안에서 그렇게 40분 간 글을 적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씨유를 이용하고 너무 불쾌해서 글 남깁니다.

택배를 발송하기 위해 씨유 OOOO점에 들렸고요.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아무도 없이 영화 소리만 들리더군요. 알고 보니 점원은 자리에 있었는데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영화를 보고 있어서 없는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영화에 집중하느라 인사는 없었고, 제가 택배 때문에 펜과 테이프를 요청하니 그런 거 없다고 하더라고요. 지난번 같은 지점에서 분명히 테이프를 사용했는데 지침이 바뀐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해당 근무자는 대충 ‘없다’고 하고 열심히 영화를 시청하였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펜과 테이프를 제가 직접 구매해서 택배 무게를 측정하고 택배를 보내는 약 10분의 시간 동안, 시끄러운 영화 소리는 끊이질 않았습니다. 계속 거슬리고 신경이 쓰이더군요. 제가 손님 대접을 받으려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들어왔는데, 인사도 없고 일어서지도 않고 영화 소리를 줄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뭐 대단한 걸 사러 편의점에 간 건 아니지만 사람 인기척에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반응이 없고 거기다 너무 시끄럽게 하니 무시받는 기분이 아주 강하게 들었습니다. 씨유에서는 최소한의 직원 교육도 안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도 영화 소리를 들으니, 무슨 영화인지 알겠더라고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였습니다. 영화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긴 처음입니다.)

택배를 전달하고 문을 나설 때도 아무 인사가 없더라고요. 제가 ‘감사합니다’라고 문을 나서며 인사했지만 대답 대신에 ‘태극기 휘날리며’를 들려주었습니다.

글쎄요. 이 글을 쓰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제가 이런 글을 쓰기는 처음이네요. 제가 경험한 모든 서비스직에서 최소한 예의는 모두 지켰으니까요. 아니 적어도 무시하진 않았으니까요.

손님이 왔는데 일어서지도 않고, 인사도 안 할 거면 근무자가 왜 있는 걸까요? 차라리 키오스크를 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 키오스크는 최소한 시끄럽게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진 않을 테니까요.

다신 씨유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근무자 교육을 최소한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죠. 방문한 고객에게 불쾌감과 소음을 선사하는 매장을 누가 좋아할까 싶네요.

제가 긴 시간 동안 쓰는 이 글이 씨유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해당 근무자(2019년 10월 28일 오후 5:00-5:30 사이에 근무한 남자 점원) 같은 사람이 다시는 씨유에 없길 바랍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그리고 동네 구멍가게를 가도 사람을 이렇게 막 대하진 않습니다.

물론 근무자가 계속 서 있을 순 없고, 일이 없는 시간에는 쉬면서 영화나 게임을 이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정도가 매우 심각하네요.

사람이 들어왔는데 인사하는 척, 보던 시끄러운 영화 소리를 줄이는 척도 하지 않다니. 제가 너무 꼰대인가요? 제가 갑질을 하는 건가요? 아마도 직원 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았으니 그랬겠지요?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택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니 기본적인 펜과 테이프를 고객에게 제공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주제넘게 택배 하나 보내는 고객 주제에 너무 길게 떠들었네요. 제가 요청하는 걸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최소한의 직원 교육
2-택배용 펜과 테이프 비치

내부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모르지만, 제가 갑질 한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제가 경험한 것을 똑같이 경험하면 누구라도 불쾌감을 느낀다고 확신합니다.

이 글을 씨유 발전에 쓸지, 한 소비자를 괜한 불만으로 여길지는 알아서 결정하시겠지요.

하지만! 편의가 아닌 불쾌감을 주는 편의점. 키오스크 보다 못한 점원이 근무하는 편의점. 시끄러운 영화 소리가 가득한 편의점. 택배 서비스를 위한 최소한의 준비가 없으면서 택배 서비스를 하는 편의점.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요?

이런 일이 씨유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지 않길 바랍니다. 저는 오늘, 똑똑하게 보았습니다. 더 이상 씨유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내가 격은 일을, 내 감정을, 글로 표현하니 마음이 조금 정리되었다. 너무 빈정거렸나 싶기도 했지만 정말 솔직한 심정을 적은 거였다. 그렇게 난, 그날 처음으로 불편(을 표현)한 고객이 되었다. 이상한 고객 블랙리스트에 오르려나 걱정도 되었지만, 아무럼 어때 생각했다. 내가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다음 날, 의문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주 작은 행동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