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강의가 있어 서울로 향한 토요일.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잠실역 6번 출구로 내려갔다. 번쩍이는 큰 유리문을 지나면 바로 지하상가다. 이곳에서 점심도 해결하고, 1시간 넘게 버스를 타면서 얻은 멀미도 잠재울 생각이었다.
이곳 지하상가의 정식 명칭은 '잠실역 지하 쇼핑센터.' 이 명칭에 걸맞게 다양한 가게가 양쪽에 늘어서 있었다. 강의 시간에 늦을까 싶어 서둘러 걸었다.
곧 김밥집과 국숫집이 몰려있는 지점에 이르렀다. 우측 편에 늘어선 식당들의 상호를 스캔했다. 제일 맛있는 집, OO 할머니 국수… 정겨운 간판들이 나를 불렀다. 덩달아 김밥을 싸던 아주머니들이 손을 흔들어 나를 불렀다.
손님이 하나도 없는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손님이 없는 가게에 들어가는 편이다. 동정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러는 편이다. 사장님은 아주 밝은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마치 첫 손님이라도 맞는 듯이. 나는 작은 가게 끝 쪽에 자리를 잡고 비빔밥을 시켰다.
서울을 가도 전주를 가도 비빔밤은 항상 무난해서 좋다는 생각을 하는데, 기름 위에서 달걀이 춤추는 소리가 나더니 곧 비빔밥이 나왔다. 웬만한 패스트푸드보다 빠르게 나온 비빔밤을 마주하니 기분이 묘했다. 바로 쓱쓱 비벼 한술 크게 떠 입에 넣었다. 그리고 꼭꼭 씹어 넘겼다.
"갱신이여 갱신. 최고 기록 갱신이여."
맞은편 옷집 청년에게 사장님이 건네는 말이었다.
"사람이 없다 없다 했는데 어찌 된 게 담날은 더 없어!"
짜증이 아닌 삶의 애환을 담은 사장님의 하소연이 듣기 싫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었다.
"적자여 적자."
또 다른 상인 분의 말이었다. 갱신이여 갱신. 사람이 없다 없다. 적자여 적자. 같은 말을 꼭 두 번씩 반복하는 상인들의 대화를 귀동냥하며 열심히 밥을 씹었다. 이 좁은 데서 걱정만 한 가득 중인 그들이었다.
코로나에 사회적 거리두기에 긴 장마에 태풍에, 뒤숭숭하다 못해 썰렁한 지하상가였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확연히 적었다. 그러고 보니 아예 가게 샷다를 올리는 않은 곳도 많았다. 서울의 중심부가 이런데 다른 곳은 오죽할까. 월급쟁이는 상인들의 고심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비빔밥 한 그릇을 다 비웠지만 왠지 속이 허했다. 배가 부른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고민했다. 또 다른 메뉴를 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 결국 시원한 냉면을 추가로 시켰다. 삼촌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하시며 사장님은 더 밝은 표정으로 더 빨리 음식을 내오셨다.
이건 동정이 아니라고. 강의를 잘 들으려면 속이 든든해야 한다고. 스스로 합리화를 하며 냉면 면발을 한 젓가락 들었다. 이따 계산은 현금으로 해야지 라고 중얼거리며 흔한 면발을 입에 밀어 넣었다.